[정치/군사]
...톤의 식량을 지원했다. 이 힘으로 소련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을 꺾었고, 1945년 5월, 마침내 베를린을 함락시켰다. 독일 국회의사당 위로 붉은 깃발이 올라가는 순간, 소련의 승리와 독일의 몰락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태평양 전쟁도 끝을 향해 달려갔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불과 며칠 뒤 나가사키에도 같은 운명이 닥쳤다. 동시에 소련군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한반도 북부로 진격했다. 단 열흘 만에 나남, 청진, 원산을 차례로 점령했고, 일본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이후 9월 9일, 미군이 서울에 도착해 일본군 항복식을 열며 남쪽에는 성조기가 걸렸다. 한반도의 운명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길 위에 놓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정치/군사]
...재앙을 예방하고 저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원폭국제민중법정 2차 국제토론회가 그러한 비극을 차단하고 평화의 버팀목을 마련하는 데 요긴한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한국원폭피해자의 입장에서 본 히로시마·나가사키 핵무기 투하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 보고, 2부에서는 ‘1945년 미국의 핵무기 투하 이후의 국제법-특히 국제인도법-으로 본 핵무기 사용의 불법성’을 밝힌다. 그리고 3부에서는 ‘(확장)억제의 불법성과 이의 한반도·동북아 평화와의 양립 불가성 및 극복 방안’에 대해 논한다.
[정치/군사]
저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는 “다투는 두 나라 중 핵 위협을 받는 나라가 핵 반격 수단이 없다면, 1945년 8월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후의 일본처럼 완전 파괴되거나, 무조건 항복이라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한반도 주변에 중국과 러시아라는 거대한 핵강국이 압박하고 있고, 일시 휴전 상태에 있는 북한은 연일 핵무기 고도화를 해나가면서, 남한 정벌과 평정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데에도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풀뿌리만 먹더라도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외쳤던 파키스탄 부토 총리의 용기와 결단을 오늘의 한국...
[학술논문] 戰時期 朝鮮人 勞務者 强制動員과 原爆被害 -히로시마·나가사키의 地域的 特徵을 中心으로-
This paper intends to investigate the reality of the forced mobilization of Korean laborers to Hiroshima and Nagasaki and the Korean victims of the atomic bomb. Most of previous research on the Korean victims of atomic bomb have focused on revealing the situation by interviewing the survivors or on contemplating the significance of atomic bombs. Due to the absolute lack of related resources, the precise
[학술논문]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 - 『원형의 전설』과 『시대의 탄생』을 중심으로
1960년대 초․중반 남․북한에서 각각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장편소설 『원형의 전설』과 『시대의 탄생』은 드물게도 원자탄이라는 핵무기를 화소(話素)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1945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된 이래 핵무기는 언제나 한반도의 운명과 가까이 얽혀 있었다. 일본제국으로부터의 해방에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국에 의해 원자탄 사용 계획이 검토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북한 각각에서 핵에너지 및 핵무기에 대한 관심이 계속된 끝에, 2005년에는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다. 핵무기는 최초 개발 직후부터 과학을 초과한 과학으로, 세계의 정치․경제․사회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자 인식론적 도전으로 취급받았던 만큼, 더욱이 한반도는 전쟁 및 휴전이라는...
[학술논문] 저위력 전술핵무기 사용의 국제인도법 합치성 연구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전세계가 핵무기 사용의 끔찍한 결과를 목도한 이후;미국과 소련이 핵군비경쟁에 나서면서 전세계는 핵전쟁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는데;이는 핵무기의 사용과 그 결과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정치적 비난가능성이 소위 ‘핵터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최근 저위력(low yield) 전술핵무기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부상함에 따라 그러한 ‘핵터부’가 약화되고 있으며;또한 핵무기 사용이 국제인도법에 의해 금지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저위력 전술핵무기는 일반적으로 전장에서 전술적 목적으로 사용될 용도로 개발된 핵무기로;전략핵무기에 비해...
[학위논문] 김정은 시대 북한 핵정책 결정과정 연구
핵무기는 자국 내 국가정책과 더불어 국제정치영역에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한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보유하게 될 정치․군사적 힘은 상당하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화되면서 끝까지 저항하던 일본은 결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핵무기 개발을 기점으로 세계정치와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핵전쟁으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을 막기 위하여 1970년 NPT 체제 비준이 완료됨에 따라 핵무장국과 비핵국으로 나누어 관리되고 있다. NPT 체제는 현재까지 유지되는 가운데 1995년 무기한 연장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노력과 달리 북한의 행동은 달랐다.
NPT는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