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월남인’과 ‘북은 이산가족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통설에 대한 반박과 함께 북의 이산가족 정책 검토
제5장 월남인에 대한 사회적 통념중상층 엘리트층 통념, 한국전쟁 전후 월남인 규모의 7 3 통념, 정치 사상적 월남동기 통념, 한국전쟁기 군복무 통념과 권토중래 통념의 허구성과 분열성을 밝힘
제6장 월북인 유가족의 ‘월북’에 대한 기억과 그들에게 남겨진 고통과 강요된 침묵의 실체 연구
제7장 월남인 공동체로서 서울 남산의 ‘해방촌’의 역사와 특성을 분석
제8장 속초 청호동에 월남인 공동체가 형성된 사회역사적 배경을 탐구
[사회/문화]
... 삶의 마지막 축제. 골드라인 휴먼센터 아트홀 오픈 기념 초대전과 콘서트로 나의 뒷모습을 남긴다. 신의 축복이었다. 전쟁으로 무희의 꿈은 접고, 클래식 발레를 “자유와 열정의 파드되”,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노래를 만들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산 세상, 아름다웠다.
새벽 바람 속 유유히 남산을 바라본다.
새벽 별이 정말 아름답다.
5월 새벽 어느날
김테레사
작가 노트
철의 삼각지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반세기 넘은 70년 그 세월 속, 남과 북, 남한강, 북한강의 흐름과 함께 그래도 꽃을 피우기도 했다. 전쟁이 유산이 되어 버렸지만, 종전의 함성이...
[학술논문] 1930-40년대 남산 소재 경성호국신사의 건립, 활용, 그리고 해방 후 변화
This article deals with the Ky ngs ng Hokuk Sinsa [Seoul National Patriotic Shrine], which was built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n Seoul, Korea during the wartime period. After the outbreak of the Second Sino-Japanese War in 1937, many military personnel were killed in the war. Since the Korean volunteers were able to joined the Japanese military units in 1938, Koreans were included in the
[학술논문] 밀양아리랑의 변용과 전승에 관한 연구
...과거에 기록된 밀양아리랑의 가사를 모두 포함하여 책이 발간되었다. 또한 매년 개최되는 밀양아리랑대축제에서는 2011년에 이르러서야 밀양아리랑의 존재성을 부각시키기 시작했으며, 2011년 3월에는 토박이들의 노래로 구성된 밀양아리랑 음반이 최초로 발매되었고, 밀양시티투어의 일환으로 밀양관아에서 밀양아리랑 공연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개최된 아리랑한마당에서는 토박이들로 구성된 밀양아리랑 단독 공연이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2012년 4월 국립민속박물관 아리랑 특별전시에서 밀양아리랑의 현지조사 및 인터뷰가 영상으로 소개되고 공연되었으며, 2012년 5월 밀양아리랑 상설공연이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등 지역성을 지닌 밀양아리랑이 2011년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학술논문] 광복 후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의 경과와 역사적 검토
...봉환을 처음 제기한 것은 1946년 3월 안의사 순국 36주기에 맞추어 우덕순 등이 성립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였으나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안의사유해찾기에 누구보다 고심하던 백범이 1949년 서거하고, 6·25전쟁 이후 남북 대립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안의사유해찾기는 관심에서 오랫동안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안중근의사의 동상이 남산에 세워지고, 순국기념일에 추모식을 거행하면서도, 안의사유해찾기는 엄두를 내지 못한 채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1980년대 들어 중국 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국교수교 전이라 해도, 민간차원의 방문이 허용되면서 안의사유해찾기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연구조사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증언, 소문에 의해 안의사유해를 찾으려는 안타까운 장면이...
[학술논문] 해방 후 평양 감리교인의 월남과 교회 재건
...감리교 교역자와 교인들은 곳곳으로 흩어져 생활하면서 지역의 기존 교회에 흡수되어 신앙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 중의 일부 교인들은 자신이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같은 고향에서 피난 나온 다른 교인들과 함께 특별한 신앙공동체를 세웠다. 이 글은 평양에서 피난 나온 감리교인들이 세운 대표적인 교회인 남산교회, 시온교회 그리고 성화교회의 설립과 발전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이들 교회들은 각각 다른 시기, 곧 남산교회는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에, 시온교회는 6.25전쟁 시기인 1951년 10월에, 성화교회는 피난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시기인 1994년 9월에 설립되었다. 그렇지만 이 교회들은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의 장소뿐 아니라 피난 나온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로 역할하였다....
[학술논문] 북한 나선시 도시개발과 남산 18호동 살림집을 통해 본북・중 합작개발의 특성
This paper seeks to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of the Joint Development between North Korea and China in Rason-si. We looked into the role of the key actors, their motivation, and development processes through investigating a residential building called Namsan 18ho-dong. A case of Namsan 18ho-dong shows how key actors attempted a new joint development model such as financing, site selection, resident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