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眞興王代 新羅의 北方進出과 對高句麗 領域向方
...황초령과 마운령 이남의 함흥 일대에 이르렀다. 진흥왕은 568년에 북한산을 거쳐 함흥 일대까지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수 후 곧바로 北漢山州를 폐지하고 南川州[경기도 이천]를 설치했다. 또한 比列忽州를 없애고 達忽州[강원도 고성]를 두었다. 진흥왕이 함흥 일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지역이 가지는 지리적 수세의 불리함 때문이었다. 곧 함흥 일대는 고구려 국내성과 평양에 이르는 교통로가 발달되어 있어 고구려의 반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 고구려군이 마식령을 넘어 안변을 차지하게 되면 그 이북에 있는 신라군이 고립될 우려가 컸다. 또한 남천주를 설치한 배경은 백제에 대한 방어체제 정비와 연관이 있었다. 곧 567년 들어 위덕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성왕을 추모하는 陵寺를 창건하고 사리장엄 의식을...
[학술논문] 6세기 후반~7세기 초반 高句麗의 南進과 對新羅 領域向方
...남북으로 이어주던 죽령로를 경유해 단양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아단성 전투의 패배로 도리어 신라가 죽령로를 통해 북진하는 기회를 맞았다. 신라는 7세기 초반까지 북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여 핵심 거점인 춘천 지역까지 장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고구려는 603년 8월 北漢山城[아차산성]을 공격하였지만 신라군에 패했다. 신라는 북한산성 전투의 승리를 계기로 604년 南川州를 폐지하고 北漢山州를 다시 설치하면서 한강 이북의 방어체계를 본격적으로 마련했다. 그러나 608년 2월 고구려군의 반격을 받고 牛鳴山城[춘천 일대]을 내주고 말았다. 다만 우명산성 전투로 되찾은 고구려의 죽령로 영유에 대한 주도권은 지속되지 못했다. 612~614년 고구려가 수와 국운을 건 전쟁을 치루는 틈에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 500리를 차지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