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6·25전쟁 휴전협상 중 남한출신 의용군 문제 누락 배경과 해결 방안
본고에서는 전쟁 중 발생한 남한 지역 의용군 발생 배경 및 규모, 휴전협상시 의용군 문제 누락과정, 전후 귀환 노력 및 해결 방안 등을 검토했다. 흔히 한국전쟁 시기 납북자라고 하면, 정치지도자 · 학자 · 우익 단체 간부 등 사회지도층 인사만을 떠올리지만, 그 구성비율 가운데 남한출신 의용군이 가장 많이 차지했다. 예를 들면, 1951년 말 작성된 내무부 피랍자 명단 126,000여 명 가운데 의용군의 규모는 약 9만 명에 이르렀다. 의용군들은 전쟁 시기 피랍자가족회나 정부 조사에서 학생, 청년단 등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납북자와 관련해서 이들이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국군과 유엔군의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952년 석방된 인원과, 휴전 후 북한을 선택한 이들은...
[학술논문] 1950년대 전시납북자 귀환 교섭과 한국정부의 대응
...북한지역으로 납치되었다. 1950년 9월 서울수복 후, 한국정부와 유엔군은 납북문제의 중대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후 한국정부는 군-관-민 공조로 전쟁피해를 조사하면서 납북 피해를 조사해갔다. 아울러 북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남한 출신 ‘의용군 포로’의 석방, 북한에 억류중인 납북자 귀환을 추진해갔다. 그리고 미8군에 이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미군 측은 유엔 본부의 승인이 필요한 ‘국제적 문제’라며 답변을 보류했다. 결국 이들 의용군 포로석방과 납북된 민간인 귀환 논의는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시작되서야 공식적으로 거론될 수 있었다. 휴전회담에서 유엔군과 공산군간의 납북자 귀환 협상은 원칙과 현실면에서도 맞부딪히고 있었다. 유엔군은 전쟁포로의 상호 1:1교환과...
[학술논문] 한국소설에 나타난 애국포로의 서사와 반공국가의 불안
...반공포로석방사건을 통해 포로의 중립지역 이송을 거부하고 진영중간지대를 부인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러한 극렬한 반공의 담론은 미국과 중국이 전쟁의 협정에 조인하는 순간까지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본고에서는 남한체제를 선택한 포로들에게 ‘애국’의 명칭이 부여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북한출신 의용군포로와 남한출신 의용군포로, 그리고 남한출신의 국군포로를 중심으로 하는 서사를 통해 애국포로 서사의 의미를 규명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김광주의 『석방인』, 김송의 「저항하는 자세」, 박영준의 「용초도근해」의 포로서사를 분석하였다. 애국포로의 서사는 민족주의와 반공주의를 결합하면서 분단사회가 전제하는 국가건설의 목표를 구현한다. 이 과정에서 애국포로의 반공주의는 전쟁의 필요성을...
[학술논문] 포로에서 민간인으로 - 한국전쟁기 유엔군 포로수용소의 민간인 억류자 심사·분류·석방 과정
...유엔군의 포로송환 정책과 상호 긴밀하게 맞물려 진행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한국전쟁기유엔군 포로수용소에는 공산군 포로뿐만 아니라, 실수로 억류된 피난민, 남한에서 북한군에 강제 징용된 의용군, 그리고 전직 한국군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정부는 남한 지역에서 강제 징용된 의용군에 초점을 맞춰 약 4만 명을 조속히석방할 것을 요구했지만, 유엔군 사령부는 휴전 협상에 대비해 이들의 처리를보류했다. 첫 번째 심사 이후 약 1년이 지난 1951년 7월, 유엔군 측은 휴전협상 포로 문제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약 3만 9,500명의 남한 출신 포로를 민간인 억류자로 재분류하고, 공산군과의 포로 교환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공산군이 이들의 명단을 요구하며 협상을 지연시키자, 유엔군은 이들의 자원에 따라송환 여부를 결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