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북조선의 정전, 한설야의 「승냥이」 재론
기독교 비판을 수반한 해방기에 재구성된 반미관은 ‘조국해방전쟁’기를 거치면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북조선에서는 해방 후 사실과 과장을 뒤섞거나 허구를 가미하여 적대적 타자인 ‘주린 이리’나 ‘미친 개’로 표상된 ‘일제’의 상을 ‘미제’에 덧씌우는 이미지 변형의 과정을 거쳐서 ‘승냥이’라는 미제의 표상을 창출했다. 이렇게 굴절된 미제의 표상은 각종 매체를 통해 북조선 전역에 확산되었고, 조미관계사가 새롭게 재조정됨에 따라 미제는 과거부터 ‘승냥이’였던 것으로 역사화된다. 여기서 한설야의 「승냥이」는 북조선 인민들에게 재구성된 반미관을 계몽하기 위해 호명되는 대표적...
[학술논문] 고립된 전사, 경계의 타자 - 탈냉전시대 한국전쟁 영화에 나타난 ‘北’의 표상 -
...경직된 질서를 깨뜨릴 때는 긍정적으로 작동할 때가 있다. 그러나 최근의 동향에는 분명히 우려할 만하게 과잉되는 점이 있다. 우정, 형제애, 민족애와 같은 감정에 의존하여 문제들을 봉합하여 온 것은 남북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의 뿌리 깊은 관습이다. 그런데 감정이 행동을 지배할 때 냉철한 판단과 합리적 소통은 설 자리를 잃는다. 게다가 ‘우리’라는 전제로 움직일 때 거기에는 언제나 타자화 되는 ‘다름’이 있을 수밖에 없다. 탈냉전시대에 들어서며 이분법을 해체하는 경계공간들이 생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여전히 타자로 남아있는 것은 ‘이념’ 문제이다. 그래서 한국전쟁 영화에서 끝까지 이념을 고수하는 인물들은 고립된 전사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술논문] 문학과 사회, 그리고 문학연구 - 상허학회 20주년과 국문학 연구
...그에 못지않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이질성의 영역도 탐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연구가 오늘날도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제기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한 까닭이다. 오늘날 여성들이 처한 환경은 전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지구촌 시대에 가속화되는 이산의 상황은 한국 사회 내부의 순혈주의 신화를 파괴하고 동남아시아 신부, 탈북자 등을 우리 안의 타자로 양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즘은 지난 시절의 도식적 인식에서 벗어나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차원에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386세대 연구자들은 개인적인 주제와 연구 영역은 달랐으나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지 해결하려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최근 젊은 연구자들이 보여주는 탈현실...
[학술논문] 분단이 낳은 한국의 국가폭력: 일상화된 내전 상태에서의 ‘타자’에 대한 폭력행사
분단을 단지 통일과 대비되는 남북한 간의 ‘특수 관계’라기보다는 남한 내의 전쟁체제 준전쟁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분단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물론 국가내부에서의 평화와도 거리가 먼 상태다. 즉, 분단체제는 휴전, 즉 내전의 잠정적중단 상태 혹은 준 전쟁 상태가 분단국가인 남한으로 하여금 어떻게 외부자(outsider), 즉 스파이뿐만 아니라 내부의 반대자나 저항세력까지 이 외부자 혹은 ‘타자’의 범주에 집어넣은 다음, 일상적인 폭력을 가하는 극단적인 형태의 지배질서인지 알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분단은 초기의 남북한 인구이동, 한국전쟁 기의 월남과 월북을 거치면서 강화되었기 때문에 가족분단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었고,이렇게 분단된 가족들은 분단체제의 변경에 위치하게...
[학술논문] 한일회담의 아이러니 ―기울어진 운동장과 은폐된 내부의 타자
...정착 과정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검토한다. 북한을 제외한 채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한미일 사이에서 전개된 한일회담은 한반도의 냉전을 고착화시켰고, 나아가 한국의 국가적 정체성의 핵심에 자유가 자리 잡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관계 구축을 추진했던 한일회담은 역설적으로 내부의 타자 일본에 대한 사유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은 일본의 자금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의 기억은 화해와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 국가적, 민족적 담론에 회수되지 않는 수많은 분열과 고통의 경험은 망각되었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식민주의의 완전한 그리고 최종적인 해결을 선언했지만, 타자를 배제한 채 관계를 구축한다는 한일회담의 아이러니는 여전히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