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특징을 북한 예술품들의 사진과 함께 예시한다. 주체철학이 정립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은 남한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보인다. 일제강점기 만주 벌판에서 유격대로 활동하던 김일성이 어떻게 북한에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할 수 있었는지, 한국전쟁을 포함해 굴곡진 현대 역사의 과정도 제 3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맥아더 장군의 공과도 서술되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이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그 과정에서 예술을 어떻게 수단화하는지도 보여준다. 김일성은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부터 기자조선, 한사군의 낙랑, 삼국시대뿐 아니라 조선말기의 제너럴셔먼호사건까지 자신을 신격화하는데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고고학과 문화유산 재건사업 등이 이용된다. 현재까지도 북한 대부분의 예술품들은...
[정치/군사]
...못한’ 6·25 참전의업보는 쉽게 없어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본서로 재정리된 동아닷컴의 ‘정전 70년, 끝나지 않은 6·25’시리즈를 진행하는 동안 기사를 손 봐서 온라인에 올려준 동아일보 디프런티어센터의 이성호 센터장과 이원주 팀장에게 감사드린다. 센터의 홍진환 기자는 인천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을 드론 촬영해 주고 중국 단둥까지 동행해 주었다. 6·25의 전황과 전선의 배치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지도와 그래픽을 제작해 준 동아일보 뉴스디자인팀의 권기령 부장에게도 큰 감사를 전한다. 김기용베이징 특파원은 베이징의 군사박물관과 단둥을 취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재단 윤융근 기획위원은 파주 설마리와 연천 태풍전망대...
[정치/군사]
...비행장에서 히긴스는 전쟁상황 시찰 차 방한 중인 맥아더 장군을 만난다. 당시 둘이 만나는 사진은 충격적이다. 30세의 히긴스는 오른손을 허리에 얹고, 70세의 맥아더는 오른손으로 히긴스의 왼팔을 가볍게 잡고 말을 건네고 있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 후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 앞에서 감히 그런 포스를 취한 사람은 없었다. 이는 맥아더가 양손을 허리에 얹고, 일본 국왕은 차렷 자세로 선 사진과 비교된다.
아무튼 맥아더는 수원 비행장에서 히긴스에게 자기 전용기에 동승을 제안하고, 히긴스는 도쿄로 가는 도중 그를 단독 인터뷰해서 ‘한국에 지상군 파병’에 관한 특종을 건진다. 이후 그녀는 6개월 동안 맥아더 장군의 특별 배려로 전선을 취재하며, 여러 특종...
[학술논문] 한국 전쟁기 천주교회와 공산 정권 ―초대 주한 교황사절 번 주교(Bishop Byrne)를 중심으로―
이 연구는 한국 전쟁기 북한 공산 정권과 천주교회의 문제를 초대 주한교황사절 번 주교를 중심으로 검토한 글이다. 이를 위해 메리놀 외방선교회와 골롬반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남긴 한국 관련 문서를 활용하여 보다 국제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하였다. 냉전에서 공산 정권은 주요한저항 세력인 천주교회를 적대 진영으로 간주하여 공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1947년 4월 7일자로 번 주교를 교황특사로 한국에 파견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와 정치인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교황청이 교황사절을 파견한 것은 한국을 독립 국가로 승인한 정의의 결단이라며 환영하였다.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도미군정과 유엔, 그리고 천주교회의 긴밀한 교류 속에 이루어졌다. 미국의 교회 관련 신문과 잡지에는 대한민국이 천주교회의
[학술논문] 데탕트 이후 영화의 한국전쟁 재현 양상에 대한 연구- 더글라스 맥아더 혹은 인천상륙작전 관련남한, 북한, 미국 영화를 중심으로
...인천상륙작전과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관련된 전쟁영화가 발표됐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들 영화들이 냉전기 한국전쟁을 소환하고 기억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긴장 완화를 뜻하는 데탕트는 1970년대 세계 국가들 간의 관계를 양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변화시켰고, 이 같은 변화를 남한과 북한은 국가의 정체(政體)를 위협하는 위기로 이해했다. 본 논문은 데탕트가 정치 외교적인 개념이지만, 이 시기 한국전쟁 관련 문화재현물에 영향을 준시대적 배경이라는 사실을 검토한다. 데탕트 시기 미국 대중은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으며, 이 같은 대중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영화는 한국전쟁과 맥아더 장군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다. 이 같은 시대적 분위기와 공명하고있는 <충돌 노선>과 <전웅 맥아더>는 좀 더...
[학술논문] 남북한 영화 속 외국인 영웅상 비교 : 인천상륙작전 의 맥아더와 영원한 전우 의 노비첸코
「인천상륙작전」(2016)과 「영원한 전우」(1985)는 외국인 영웅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한에서는 보기 드문 영화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과 해방 직후 북한에서 김일성의 목숨을 구해 준 노비첸코 소위가 그 외국인 영웅이다. 맥아더가 남한의 보수 진영에 의해 신격화된 존재라면, 노비첸코는 북한 인민의 친근한 벗으로 나타난다. 그들에게는 분단에 기인한 남북한 사회의 특징과 문제점이 투영되어 있다. 맥아더를 둘러싼 남남갈등은 합리적 논쟁을 통해 현대사의 진실 규명으로 이어진다면 부정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노비첸코의 국제주의적 희생정신은 수령 체제의 정치적 프리즘을 걷어내고 본다면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소재가 될 수 있다. 두 외국인 영웅은 영화의 텍스트를 넘어 현대사의 새로운 문맥에서...
[학술논문] 낙동강방어선 방어작전을 통해서 본 워커 장군의 전투지휘 및 리더십 재조명
...낙동강방어선 방어작전과 워커 장군의 전투지휘 및 리더십을 재조명해 보고자 하였다. 그 이유는 낙동강방어선 방어작전과 워커 장군이 인천상륙작전과 맥아더 장군의 빛에 가려 낮게 평가되고 한국인의 기억에서 워커장군의 전투지휘 및 리더십이 잊히어 가는 상황에서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낙동강방어선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에 의해 서울이 함락되고 한국군은 지연전을 수행하며 형성되었다. 이런 상황에 미8군사령관 임명을 받기 전, 7월 8 일 워커 장군은 대전에 현지 정찰 차 방문하여 미 2사단장 딘 소장과 만나 피아 현지상황을 파악하고 낙동강을 활용한 방어선을 구축하기로 구상하였다. 따라서 낙동강방어선은 Walker Line이라고 불려진다. 낙동강방어선을 전투지휘한 워커 장군은 미8군사령관이자 유엔지상군사령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