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조선문학가동맹과 제주 단선반대 항쟁
남북의 문인들이 서울에서 함께 모여 조선문학동맹을 결성하기로 논의하였는데 이러한 결정은 모스크바 삼상 회의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고 이어져 1946년 2월에 조선문학가동맹이 정식으로 수립되었다. 조선문학가동맹은 미국과 소련을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이들의 협력을 통해 조선 임시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하면서 미소 공동위원회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문인들과 친소련의 관점에서 미소 공동위원회를 지지하는 문인들 사이의 차이가 일정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미소 공동위원회를 통해 조선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통일독립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통된 전망을 갖고 출발하였다. 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이후에는 회의의 재개를 요청할 정도로 미소공동위원회의 성과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어렵게 열린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학위논문] 1948年 平壤 「南北朝鮮 諸 政黨·社會團體代表者 連席會義」와 北韓의 統一戰線戰術에 관한 硏究
...미국은 모스크바 미ㆍ영ㆍ소 3국 외상회의에서 한국 문제에 대해 토의하고 그 결정사항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한국에 대한 미ㆍ영ㆍ중ㆍ소 4개국에 의한 최소한 5년간의 신탁통치안이었다. 한국에서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소련은 이와 같은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미국의 한국에 관한 신탁통치 협상을 무력화시킬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소련은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미국 측의 한국에 4개국 공동위원회를 설치하는 안 대신에 자신들의 미소공동위원회 설치안을 채택하게 한 후, 북한 및 남한의 좌익으로 하여금 신탁통치에 찬성하게 하였다.
소련은 미소공동위원회 협의를 지연, 결렬시키는 동안 북한에 공산정권 수립을 위하여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창설하고 인민위원회를 수립하였다. 북한은 한국인들에게...
[학술논문] 해방 직후 황해도 신천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기독교계의 대응
...사례를 중심으로 살피는 연구이다. 북한 지역사와 교회사의 상호절충 보완을 시도하는 연구이기도 하다. 해방 직후 신천의 기독교계는 토지개혁이라는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정치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이는 당시 토지개혁이 대지주층을 기반으로 한 남북한의 정당사회단체조차도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였는데 기독교계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모스크바삼상회의 결과를 둘러싸고 신탁통치 파동이 전개될 때 개신교계 특히 장로교 측은 노골적으로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지지를 드러냈다. 소련군과 북한 당국은 기독교도연맹 창설을 통해 개신교회를 정권에 우호적인 조직 하에 망라했다. 반면 노골적인 반공주의를 보이지 않았던 천주교회에 대해서는 교회 활동을 대체로 인정하면서 포섭하고자 했다. 1946년 10월 기독교도연맹...
[학술논문] 남북의 김기림을 넘어서
...금지되었던 정지용과 김기림이 이 시기에 읽히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김기림은 매우 문제적이다. 한국전쟁 시기에 한반도에서 갑자기 사라진 김기림은 해방직후 줄곧 남북협상파로서 활동하였다. 자주적인 통일독립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김기림은 미국과 소련을 적극 환영하였다. 일본을 제압한 미국과 소련의 힘을 업고 통일독립국가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신탁통치가 시작되자 비판적 지지로 전환하였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새로운 제국의 이익을 잘 알고 있지만 그 길 아니고는 통일독립을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 없기에 비판적 지지를 하였다. 1947년 중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김기림은 분단이 올 위험성을 감지하고서는 남북협상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부 지식인들은 소련을 믿고, 다른 일부...
[학술논문] 북한 역사교과서의 해방 3년사 서술 변화
북한 역사 교과서의 해방 3년사 서술의 기본 골격은 1960년대 말~1980년대 초에 만들어졌다. 그것은 김일성 중심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강조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일제로부터 조선을 해방한 조선인민혁명군과 남한을 강점한 미제국주의의 대립 구도로 현대사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1982년 『조선전사』의 완간은 북한이 ‘우리식 사회주의’의 역사를 자기 정리한 후, 내외에 공식적으로 선포한 결과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체사상을 방법론으로 한 역사 재정리 사업과 유일사상 체제 강화 과정은 ‘약소국형 사회주의’ 국가 북한이 선택한 혁명 계승의 길이자, 조용한 문화혁명의 길, ‘우리식 사회주의’ 구축의 길이었다. 북한의 해방 3년사 서술은 해방의 주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