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6.25전쟁 기간 중 미국의 대한 군사정책이 한국해군력에 미친 영향 -작전·전술교리 및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With the end of the World War Ⅱ, the United States occupied South Korea and passively supported South Korea with military assistance after due consideration of the political and military dynamic relationship with the Communist power. After North Korea's invasion broke out in 1950 on the Korean Peninsula, the United States judged it as a challenge from the Communist power and dispatched troops,
[학술논문] 6.25전쟁시 야전훈련사령부(FTC)의 창설과 역할
이 연구는 6•25전쟁 시 한국군 사단을 훈련시키기 위해 창설되었던 야전훈련사령부를 연구하였다. 6•25전쟁 발발과 동시에 미국은 전쟁에 참여하여 작전을 주도하였다. 1950년 10월 경 중국군이 전쟁에 개입하여 북한을 지원하면서 미국은 전쟁의 완벽한 승리를 포기하고 전선을 유지한 채로 정전협정을 통한 전쟁 종결을 목표로 삼았다. 유엔군이 전선을 유지하는데 있어 한국군 사단의 능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1951년 7월에 전선이 소강상태가 되면서 당시 한반도 작전을 지휘하던 밴플리트는 한국군 사단을 훈련시키기 위한 특별한 기구를 창설하였고 이것이 바로 야전훈련사령부이다. 야전훈련사령부는 회복기와 훈련기로 구성된 9주 간의 훈련프로그램을 한국군 사단에 제공하였으며, 당시 대부분의 사단이 이
[학술논문] 초대 주한미국대사 무초와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응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가장 중요한 외교문제 가운데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였다. 미국에서도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군부와 이에 따라 조기 군대철수를 주장하는 미 합동참모본부의 구체적 계획에 의해 주한미군 철수가 가시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주장으로 유엔의 개입이 이루어져 선거가 치러진 신생 대한민국의 장래와 안보 취약은 당장 미군 철수로서만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 국무부에서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되도록 지연시키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주한미군의 즉시 철수를 주장하는 미 군부와 가능하면 이를 지연시키고자 하는 미 국무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한 정보와 함께 상황판단을 해줄 현지 미국 정부 담당자였다. 따라서 이를 위해 당시 부임한 무초는 주한미외교단(Americ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