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박근혜와 시진핑의 프로파일 비교 : 한·중 양국의 외교안보 분야의 협력 방안을 중심으로
...확보함으로서 두 나라 외교에 최고결정권자가 되었다. 둘째, 중국은 강대국 및 주변국가와 우호적 관계 유지. 셋째, 정치적․군사적 긴장관계를 협력관계로 구축시키는 남북 간의 발전은 한국의 한반도 주도외교(KI-Diplomacy). 넷째, 한중간 사회문화교류를 확대 실천하여 외교안보교류를 활성화. 다섯째, 한-중-러, 유라시아 시대를 여는데 양국이 선도적 역할 모색이 그것이다. 본 연구의 결과 다음 몇 가지를 제의한다. 첫째, 박근혜의 시진핑 초청 ‘제2차 한.중 정상회담의 한국개최’를 제의한다. 둘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실행이다. 셋째, ‘한중국회의원 협회’의 정례화 및 내실화하고 한중 문화교류의 확산과 민간외교의 확대실행, 양국 유학생 교류확대법 제정을 제의한다.
[학술논문] 이슬람문화 내에서 태권도의 역할과 가치
이 연구는 시리아에서 16년 동안 민간 외교 사절단으로서 태권도를 직접 보급한 경험의 구술사적 내용을 토대로 철학적 논의를 진행하였다. 친북한 성향이 짙고 우리나라와 미수교국인 시리아의 태권도 보급은 태권도 수련을 통해 획득될 수 있는 예의정신, 극기정신, 평화정신, 조화정신 등이 문화교차, 즉 문화충돌과 문화공존을 통해 이슬람 정신에 부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정치적 성향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태권도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변용성을 발휘하는 것이 태권도의 전파에 성공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이슬람 문화는 알라신만을 섬기고 그 이외 누구에게도 허리를 숙여 인사하지 않는다. 알라신 이외에 허리를 굽히며 목례를 한다는 것은...
[학술논문] 1970년대 전반기 북한의 대미접근: 미국조선친선공보센터의 활동을 중심으로
북한의 타국 협력자들은 북한과 외교관계 발전, 반미 연대 강화, 주체사상전파, 통일정책의 지지확대, 남한과 외교경쟁에 있어 중요한 지원군이었다. 대미 외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공산당은 대표적인 협력세력이었다. 1970년대 북한은 미중관계개선 국면에 편승해 다각적인 대미접근을 추진했다. 그 일환으로 북한은 미국공산당과 협력해 미국조선친선공보센터라는 대미 선전기구를 미국 내에 조직했다. 공보센터는 미국의대북 적대 정책 철폐, 주한미군 철수 등 한반도 문제에 있어 북한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고 동시에 대미 접근에 있어 미국 내 북한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있었다. 선전이 주된 방식이었지만 대중들을 통한 대 의회접근과 같은 공공외교활동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상위 차원의 대미 접촉이 순조롭지
[학술논문] 1970년대 한미 관계와 민족복음화 운동의 상관관계
...안보위기에 따른 반공의식 강화에 상호 협력하였다. 그와 함께 한국의 종교와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 비판 여론이 고조될 때, 기독교인들은 여의도 대형집회를 통해 국제 사회에 한국 정부가 신앙과 집회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였다. 그와 함께 기독교실업인회의 김인득 장로와 김인준 장로와 김장환 목사는 1975년부터 76년 사이에 3차례의 방미 민간외교 활동을 통해 반한 감정을 완화시키는 활동을 하였다. 1976년에 프레이저 의원이 제안한 한국 군사원조를 삭감하는 413호가 통과되었다. 그러나 포드 대통령의 거부로 의회로 반송되었을 때, 한국원조를 지지하는 더윈스키 안이 통과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활동과 함께 김인득과 김장환 목사의 후원활동을 받은 미국의 극동방송 사장 보우만이 협력하였다....
[학술논문] 1970년대 초 북한의 대미 인민외교 연구
북한은 상대국 ‘인민’을 활용하여 비정부 수준의 접촉을 도모하는 인민외교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북한 인민외교의대상은 상대국 인민(국민)이었다. 이와같은 비정부 차원의 접근은주로 조선노동당 국제부와 당의 지도를 받는 당외곽 조직인 대외문화연락위원회, 각국의 친선협회, 김일성연구소조, 연대성위원회등 당 외곽단체에 의해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인민외교 접근 시 1단계에서는 조선노동당 국제부의 지도 하 상대국의 정당과 교류하여 상대국과 상호 친선단체를 조직하였다. 2단계에서는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등 당 외곽단체를 앞세워 비정부 수준의 대표단을 파견하여 경제ㆍ문화 교류를 도모한후 경제ㆍ문화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3단계에서는 민간무역대표부 및 공보관 등을 개설하는 단계를 거쳐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