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국전쟁 이후 북한영화의 제작 및 중국에서의 상영(1955∼1960)
...전파하는 정치적 기능이 중요시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곧 북한영화의 창작과 비평에 있어서 유일하게 바람직한 수법이자 기본 노선으로 대두되었다. 아울러 ‘8월 종파사건’의 발발로 말미암은 북ㆍ중 관계의 악화가 양국 간의 영화교류 활동에 미친 영향이 가시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7년 말부터 중ㆍ소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북한이 중국 편에 섬으로써일시적으로 굴절되었던 북ㆍ중 관계가 급격히 밀착되었다. 이에 따라 북한영화의중국 상영은 역시 활기차게 재개되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그중에서도 ‘반제영화’, 구체적으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반미영화’와 김일성이 주도한 항일 빨치산활동을 소재로 한 ‘항일영화’가 크게 수용되었다.
[학술논문] 남북한 영화의 교류·관계사 연구(1945~1960)
본 논문에서는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1960년까지 남북한 영화의 교류 및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해당 시기 남북한의 영화를 살펴보고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서로에 대한 표상을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북한영화사의 고립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남한과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 관계를 맺었음을 밝혔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남한과 북한은 전 분야에 걸쳐 지속적인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남북한의 영화에서도 영향을 주었다. 해방 직후부터 1950년까지의 남북한의 영화계는 영화인들의 이동으로 인해 서울 중심의 영화계가 재편되는 양상을 가져왔다. 영화인들의 이러한 이합집산은 북한영화계의 인적 자원 확보, 남한영화계의 좌익 영화인 몰락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또한 양자에 대한 표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