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전시 북한의 반동분자 처리: 군중심판과 두문
한국전쟁 당시 38선 이북에 진출한 국군과 경찰은 반공치안대와 함께 점령지 주민들에게 남한 헌법과 일민주의, 반공주의 등을 교육했다. 인민들에 대한 사상적 재정향은 전쟁패배와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회의, 그리고 북한정권으로부터 이탈을 가져오는 ‘반혁명 상황’을 초래했다. 체제 핵심집단인 로동당 조직은 위기에 처했고 당원은 계급성이 약화되어 당증을 버리고 도망쳤으며, 일부 주민은 우익청년단을 돕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신생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의 정치교육과 토지개혁, 남녀평등정책 등 ‘민주개혁’ 조치의 실패이자 지도부가 인민들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얻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북한은 일시적 강점기 때 적에게 협력한 자들을 반동분자로 처리하였는데, 사회적 처벌의...
[학술논문] 2010년대 남북한 소설에 나타난 ‘탈북 서사’의 새로운 양상 고찰–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와 반디의 「탈북기」를 중심으로-
...문제라는 보편성을 함께 주목하게 한다.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는 탈북 이방인 로기완의 삶을 추적하면서 방송작가인 김작가의 여행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과 상처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생존의 이유를 확보하는 동력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디의 「탈북기」는 기존 북한 소설과는 다르게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의 자식’인 일철과 그의 가족이 연좌제식 차별 속에 북한에서 탈출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형상화함으로써 체제의 금기를 비판하는 문학적 위반을 감행한다. ‘탈북민을 매개로 한 생존 모색’과 ‘현실 풍자적 체제 비판’이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드러난 남북한 소설 2편은 기존 ‘탈북 문학’이 보여준 ‘기아와 고통’...
[학위논문] 북한의 종교정책변천에 관한 연구
...근거와 이념적 변천과정도 살펴보았다. 북한 주민의 통치이념으로 작용되었던 주체사상은 북한의 종교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따라서 본 논문은 북한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북한체제가 사회주의이론과 주체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구소련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반종교적 정책이나 반동적 또는 반혁명적 집단으로 이해되었던 역사적 배경 부분을 설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1972년 헌법 제54조에 의해 반종교선전의 자유를 규정함으로써 종교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철저하게 억압하는 반종교정책을 실행해왔기 때문에 북한의 종교정책이 어떤 목적으로 변하였는지 그 변천과정을 분석해 보려고 했다.
본 연구는 시기별로 북한 내부에서...
[학술논문] 재난으로서의 전쟁과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평양 적치(敵治) 경험’과 『대동강』(한설야) 다시 읽기-
이 글은 팬데믹의 재난 상황에 비추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한 단서로 한국전쟁시기 ‘평양 적치(敵治) 경험’과 그 소설화 사례인 한설야의 『대동강』에 주목했다. 『대동강』은 ‘평양 적치(敵治) 경험’을 소재로 삼은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드물게도 미군과 국군 관할하에 놓인 평양을 배경으로 삼아 어린 인쇄노동자들의 신문발간 방해공작과 삐라 살포 투쟁을 부각시킨 전쟁의 서사이다. 이 글에서는 ‘적치 평양의 전시경험’, ‘어린 인쇄노동자들’의 인물 구성, ‘전쟁의 재난적 국면’과 그것의 서사화,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등을 살펴보았다.
[학술논문] 한국전쟁기 유항림의 「진두평」의 장르에 관한 논쟁 -소설이냐? 전투 실기냐?
...잘 형상화한 소설로 평가했다. 7월 열린 문예총 연구회는, 이태준과 김남천의 주도로 「진두평」이 기록성이 강한 소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1952년 9월 초 김일성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으로부터 홀대를 받고 10월에는 한국전쟁 휴전 협상이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11월 박헌영은 1925년 자신이 수립한 조선공산당이 조선로동당의 출발이라고 주장하며 김일성에게 도전하였다. 이때부터 「진두평」의 장르 문제는 남로당 계열 문학자의 반혁명 음모에 관한 문제로 바뀌었다. 11월 평론에서 엄호석은, 이원조가 「진두평」의 장르를 사실주의 문학으로 왜곡하여, 북한 문학자들에게 자연주의 문학의 창작을 권장했다고 비판하고 이원조에 대한 당의 판단을 요구하였다. 12월 15일, 김일성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5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