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평양영화축전의 성립과 그 정치적 의미에 관한 연구
이 연구는 ‘평양영화축전’의 성립 배경과 대내외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평양영화축전은 1987년 처음 개최된 이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북한 유일의 국제영화제이다. 평양영화축전은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이 친선영화제를 축제 형식으로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영화제는 2006년 제10차부터 ‘평양국제영화축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고, 2014년에도 개최되었다. 북한이 처음 영화제 개최를 주도하게 된 것은 제3세계 비동맹국가와의 친선 강화가 주목적이었다. 한편, 김정일은 과거부터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시기를 체제 정당성의 근간으로 삼았다. 현지지도와 각종 지원을 통해 이때 창작된 문화예술을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영화제를 통해 후계자...
[학술논문] 1950∼1960년대 유엔의 ‘조선 문제’ 논의에 대한 북한의 대응
...‘조선 문제’ 토의에 대응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북한은 소련 등 동구권 사회주의 진영, 그리고 비동맹 제3세계라는 두 개의 외교적 축을 활용하여 ‘조선 문제’ 토의에 대응했다. 유엔총회 참가에서 배제된 북한을 유엔 무대에서 핵심적으로 대변한 것은 소련이었다. 또한 1960년대 이후 대거 등장한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 중 상당수가 북한의 미군 철수 주장에 동조하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았다. 동구 사회주의 진영의 적극적인 협조, 제3세계 국가들의 영향력 상승이 어우러지며 196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조선 문제’ 대응은 매우 공세적으로 이루어졌다. 1950∼60년대 ‘조선 문제’ 토의에 대한 북한의 대응 과정은 북한이...
[학위논문] 1953~1971년 유엔의 한반도 분단 관리 구조의 형성과 전개
...문제’가 ‘한국 문제’ 토의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영연방 국가들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미국은 1964년 ‘한국 문제’의 자동상정 중단 방침을 세웠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 소련 등 공산 진영이 ‘한국 문제’ 토의에서 공세적 태도로 전환하고 비동맹 국가들에 여기에 호응하면서 유엔의 정치적·군사적 관여는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소련과 공산 진영은 북-중 결렬을 가속화하기 위해 언커크 해체와 유엔군 철수를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특히 비동맹 제3세계 국가들과 더불어 유엔군사령부의 법적·제도적 약점을 파고들며 한국과 미국을 난관에 빠뜨렸다. 유엔군·유엔군사령부의 정당성에...
[학위논문] 1948∼1968년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 연구
...느꼈다. 북한은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으로서 중국과 소련 같은 대국에 의존하기보다 작은 나라들과 자주적 연대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냉전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은 1960년대 초 중국에 기반한 중립국 외교를 벗어나 스스로 작은 나라들과 연대를 지향하며 아시아·아프리카·라틴마에키라 지역의 ‘중립국’ 혹은 비동맹국가들과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섰다.
남한의 ‘중립국’ 외교도 1965년을 기점으로 큰 분기를 겪었다. 군사정부 및 제3공화국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중립국 외교는 1965년 베트남에 파병함으로써 위기를 맞았다. 자유진영의 상당수 국가들조차 미국의 베트남파병에 비판적이었는데도 남한은 자유세계 수호와 대미외교 강화를 위해 참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