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사랑도 청춘도 목숨도 조국의 통일을 위해,
조국통일 투쟁의 한길 위에서 만난 동지들
[사회/문화]
...유형 길에 잃게 된다.
1945년, 세 여자는 각각 서울과 중국 연안,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해방을 맞이한다. 명자는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해 활동하고, 허정숙은 의용군들과 함께 사상의 고향인 평양으로 향한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의 청사진을 그리던 것도 잠시, 남쪽은 친탁 반탁을 둘러싼 좌우 대립으로, 북쪽은 만주빨치산 출신 김일성과 조선공산당, 연안파, 소련파 등 정파 간 권력싸움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고명자와 허정숙은 이런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온몸으로 시대를 겪어낸다. 주세죽은 조국의 해방에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스탈린에게 유형 해제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써보지만 아무 답변을 듣지 못한다.
남북 모두 불안한 정세가...
[정치/군사]
북한은 해방공간에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북한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만, 사회주의를 선택한 것은 결코 ‘아래로부터의 요구’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소련군이라는 호랑이에 올라탄 김일성과 빨치산을 비롯한 사회주의 정치세력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결과일 뿐이었다. 북한의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식민지 시기 억눌리고 가난했던 민중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했다. 본래 모든 이데올로기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그를 기준으로 현실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이를 극복할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 북한의 사회주의 세력은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빈곤과 저발전을 극복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전후 북한의...
[학술논문] 박헌영의 북한군 초대 총정치국장 임명 배경 연구
...붕괴와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군에 대한 당적 지도를 담당하는 총정치국장에 이례적으로 남로파의 영수 박헌영이 임명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1)총퇴각으로 인한 만주파의 군내 위상추락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권위차용전략’(Strategy of Authority Borrowing) 2)전선이남 빨치산 투쟁의 영향 3)남한 내 지구당 활동과 빨치산 투쟁을 강조해 온 스탈린의 권고를 토대로 박헌영의 총정치국장 임명 배경에 대해 살펴본다. 결과적으로 설립 초기 총정치국의 위상과 역할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총정치국장 박헌영에 대한 김일성의 ‘권위차용적 역할기대’와 총정치국장 직책에 대한 박헌영의 ‘낮은 기대감’이 주된 이유였다....
[학술논문] 해방과 개념, 맹세하는 육체의 언어들 ― 미군정기 한국의 언어정치학, 영문학도 시인들과 신어사전을 중심으로
...싸움”이라 요약하였다. “하나는 말의 헌법을 만들려고 들었는데 다른 하나는 현실의 움직이는 산 말에 충실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개념이 투쟁을 낳고, 투쟁 개념이 현실을 움직이던 시대. 입에서 나오는 외침인 구호가 더 이상 개념과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 맹세가 여전히 의지와 행위와 윤리를 가졌던 시대. 약속의 시대. 개념이 해방된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반공’ 혹은 ‘빨갱이’라는 무시무시한 큰타자의 등장과 함께 해방의 언어 경험은 운동가들의 ‘지하의 언어’ 혹은 빨치산의 ‘산하의 언어’ 안으로 底流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에게 대일본제국과 대한민국은 별로 다를 게 없는 나라였다. 반공체제의 본격화와...
[학술논문] 한국 소설 속에 나타난 인민재판의 양상 - 황순원ㆍ장용학ㆍ조정래의 소설을 중심으로 -
...행위라는 생각을 장용학은 한 것이기에 누혜를 자살로 이끌었던 것이다. 공산포로를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르게 한 살로메에 빗댄 것은 폭력이 잘못된 것이라는 작가의식의 소산이었다. 조정래는 ≪太白山脈≫에서 인민재판이 폭력에 대한 폭력적 반응이었다는 점에서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미군정이 실시된 이후 남한에서는 남로당이 불법화되어 지하로 숨어든다. 그래서 빨치산 투쟁에 나서게 되는데, 조정래는 그 책임이 미국과 이승만 정부에게 있다고 보았다. 남로당에대한 탄압에 맞선 자구책과도 같았던 인민재판을 ‘방어적 폭력’ 내지는 ‘상대적 폭력’이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인민재판’이라는 폭력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작품의 주제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연구하였다...
[학술논문] 이태준, 남로당 빨치산 문학의 기원 -그 미학적 특징과 정치적 논쟁점을 중심으로-
빨치산 문학은 식민지 시대의 항일빨치산 문학과 해방 이후의 남로당 빨치산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태준의 <첫전투>(1948.12)와 <고향길>(1950.7)은 후자에 속한다. 이 소설들은 1947년 말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 이후 남로당의 변화된 전술인 ‘미 제국주의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비합법 투쟁’과 연결되어 있다. 이태준은 중간파로서 남로당 노선에 동의하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인민민주주의 국가의 평화적 수립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1947년 10월 이후 급변한 정치 상황과 남로당의 전술 변화는 그의 정치적 전망과 배치되었고, 이는 <첫전투>에서 유격전에 대한 회의적 전망으로 표현되었다. 이후, 그는 당의 문학 노선에 따라 <첫전투>의...
[학술논문] 지리산권 빨치산의 형성과 활동
... 요인에 의해 자생적으로 발생했다. 유격투쟁은 1949년 하반기부터 외부적 요인으로 일시적으로 고양되었다가 동계토벌로 소멸 직전에 이르렀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패퇴하면서 지역 유격대가 재정비되어 6개의 각 지방당 조직은 산악으로 들어가 거점을 구축했다. 경남도당 유격대는 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결성되어 지리산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전쟁 전 지리산에서 활동하던 이현상부대는 1950년 9월 말, 후퇴하던 중에 조직을 새로 편제하여 ‘남부군’이라는 이름으로 남하했다. ‘남부군’은 전쟁 전 1949년 4월 이후부터 1953년 하반기 이후 소멸될 때까지 중단 없는 유격활동을 전개한, 지리산권 일대 빨치산 활동의 시작과 종결을 아우른 집단이다. ‘남부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