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북한의 ‘大同江文化論’과 고조선인식 검토
...후반기에 문명사회로 변화,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대동강문화의 내용은 대동강유역의 신석기문화와 단군릉, 비파형동검문화로 대표되는 청동기시기의 부락, 성곽, 고인돌문화 등으로 집약된다. 이 내용은 북한학계의 고조선연구사에서 기존 고조선 요동중심설에서 평양중심설로 전환된 획기적 사건이며 단군을 역사화한 이래 평양을 중심으로 구석기이래 우리 민족의 중심거점이 대동강변 평양일대였음을 강조하는 논리였다. 이 논의는 북한 고고학계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였는데 평양성지화를 통해 민족시조 단군-동명왕-왕건-김일성으로 연결되는 북한의 역사적 정통성과 공간적 성역화를 추진하는 목적의 결과물이었다. 한편 이는 북한 고대사의 민족주의 색채를 완성시켜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중국이 추진한 요하문명론과 정치적 목적성에서 유사성을 띠고 있다.
[학술논문]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한미관계의 방향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미 양국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동맹이라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전략적으로 이익이 되는 동맹이라는 공감대 위에 ‘호혜적 전략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혜택을 누려온 한국으로선 보호무역주의 색채를 띠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한미 FTA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구체적 자료를 바탕으로 강조해야 한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아시아에서 다자협력보다 공세적 양자관계를 우선 시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양자관계와 세력균형정책만을 중시할 경우 역내 반미감정 고조나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비판이 고조될 수 있으므로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미국의...
[학술논문] 김소월 개념의 전유와 분단 - 남북한 문예사전을 중심으로
...남북한 사전에서 도출된 의미를 살펴보면, 남한에서는 김소월을 재능있는 천재 시인에서 불행한 천재 시인으로 의미가 이동했다. 전기 정보의 갱신은 주로 아편 자살과같이 김소월의 죽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학적 평가는 민요적 서정시에 천재적인 기질을 보여준 시인에서 여성적 목소리를 통해 민요적 기법에 성공한 시인으로이동해갔다. 후대로 갈수록 현실인식과 민족주의적 색채를 보여주는 후기 시 평가도 확대되었다. 북한에서의 김소월은 1950~60년대 활발히 논의되었으나 1967년주체시대 이후 북한의 문학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김소월은1950년대처럼 비판적 사실주의 작가로 귀환했다. 이는 1950년대 중반 이후에 북한에서 논쟁되었던 사실주의 발생발전론의 결론이 그대로 계승되었기 때문이다. 『주체문학론』에서...
[학위논문] 남북한 통일 과정에서 필요한 디자인정책 연구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발전기에는 지역과 세대의 화합을 위한 디자인정책 방향이 제안되었다.
교육측면에서는 북한의 주체미술론 교육의 이질성 극복과 통일과정에서 발생될 남북 디자인교육자, 전문가, 전문기업들에 대한 자격 기준에 남북 합의과정이 필요할 것 예측되었다. 산업측면에서는 국제기준에 따른 남북 표준 산업분류체계, 규격 및 색채의 표준 표기, 디자인통계 구축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남북한 통일과정의 순서대로 연구를 요약하면, 디자인정책 방향은 민간 교류협력 추진과 민족성 회복을 위한 상징매체 검토, 남북 균형발전을 위한 공공디자인 등이 전망되었다. 이 연구 결과는 남한 디자인 교육기관과 관련 공공기관에 북한 산업미술의 기초적 정보를 제공하는데...
[학술논문]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模寫圖의 가치와 활용에 대하여
...북한에서 모사도 제작에 참여한 인물은 월북화가 출신의 정현웅과 손영기였으며, 1952년부터 안악3호분을 비롯한 다수의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사도를 제작하였다. 現狀模寫의 방식으로 그린 모사도는 일제강점기 오바 스네키치(小場恒吉)가 제작한 모사도에 비해 매우 정교하게 기록되어 있어 원천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흑백사진, 유리건판 등에서 설명되지 못하는 벽화 고유의 색채는 물론 긴 세월에 걸쳐 진행된 벽화의 박락과 오염상태 등을 생생하게 기록한 모사도는 이후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의 범본으로서 활용되었다. 북한의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는 문화재 원형 기록이라는 목적 외에도 해외 선전용으로 재생산되었다. 1952년 헝가리 전시를 비롯해, 다수의 해외 전시를 위해 집체화 제작 형태로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수십 기의 모사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