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反식민주의 역사학에서 反역사학으로 - 동아시아의 ‘戰後 역사학’과 북한의 역사 서술 -
I named the series of historiographies in east asia, which have advocated the independence of former colonies referring to the historical materialism, as ‘post-war historiography’, and understood the historiography of North Korea in the context of them. From the first stage of nation building, North Korea started writing the history of Korea newly to overcome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학술논문] 낙랑군 출토 봉니의 진위에 대한 기초적 검토
낙랑군 유적에서 출토된 봉니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수집품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된 99건197점, 1935년 낙랑토성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후 도쿄대학에 남겨진 15점, 그리고 1937년과 1938년 두 차례에서 걸쳐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구입한 9점이 전해진다. 낙랑 봉니는 1919년 최초 확인되었는데,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정식 발굴품이 아니라 식민사학의 불순한 의도 하에 조선총독부박물관 주도로 수집되었기 때문에 진위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계속적으로 확인된 봉니들도 대다수가 발견품으로 신고되어 입수되었거나 고미술상을 통해 구입된 발견품이어서 진위의 논란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1930년대 위당 정인보는 '낙랑 봉니 위조설'을 제기하였고, 해방 이후 고조선의 재요녕성설에...
[학술논문] 역사 교과서 논쟁과 뉴라이트의 역사인식
...많은데,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이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현대사 연구를 이끌었던 사회과학계의 역사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과학계가 주도한 한국현대사 연구 성과를 정리한 개설서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1982년에 펴낸 『한국현대사』(탐구당)와 대한민국사편찬위원회가 1988년에 펴낸 『대한민국사』(탐구당)가 있다. 또한, 식민사학과 실증사학의 계보 아래 박정희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국가주의 역사학의 계보와의 연관성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주의 역사학이란 ‘일제하 민족 개량주의자들의 종족적, 문화적 민족주의를 계승하고 미국의 근대화론을 도입하여 극우반공정권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화하고 국가 주도로 추진하는 종속적인 자본주의 산업화에 기여하는...
[학술논문] 해방 이후 북한의 국가건설과 고고학 ‒ 보편성과 특수성
...하였는가? 본 연구에서는 북한고고학의 전개 과정을 국가건설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보편성과 특수성을다른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와의 비교연구를 통해 탐색하였다. 해방 이후 북한 고고학의 특징으로는 맑스 ‒ 레닌주의 유물사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역사 연구에서의 과학성과 인류사의 보편적 법칙성을 강조한 점,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국가의 형성과정 파악에 기여한 점, 민족문화 부흥을 목표로 하면서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기여한 점을 확인하였다. 또한 북한 고고학이 다른국가건설의 과제를 당면한 다른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과 유사한 발전 양상을 보였음을 밝혀내고, 이를통해 북한 고고학이 동아시아 고고학의 한 변주로...
[학술논문] 북한 『조선력사』(상)(1963) 교과서의 대외관계사 서술 검토
...투쟁’과 ‘을지문덕, 연개소문, 양만춘, 강감찬 등의 활약’ 때문이라고 평가하였다. ‘애국주의’를 강조한 것은 역사교육을 위한 교과서로 편찬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몽고에 항복한 고려에 대해서 오히려애국적인 고려 인민들의 투쟁으로 몽고를 물리쳤다고 반대로 서술하기도 했다. 대외무역에대한 서술은 대체로 간략히 기술하였다. 문화 부분에서는 외래문화의 영향은 의도적으로 감추고, 독창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특히 일본 등에 끼친 영향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몇 가지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식민사학을 극복하고 대외항쟁을 강조하려 했던 당시 북한 역사학계의 현실을고려할 때, 한계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