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사상계 경제팀’의 개발 담론
1950년대 후반 성창환을 중심으로 이상구, 유창순, 이정환, 이동욱, 이창렬로 구성된 ‘사상계 경제팀’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사상계 경제분야에 논설을 기고하며 �사상계�의 개발 담론을 주도했다. ‘사상계 경제팀’은 국가주도의 산업화정책과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급속한 공업화와 경제성장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자, 사상계 그룹은 이를 4․19 혁명을 계승한 민족혁명으로 평가하고, 군사정권에 대한 참여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군사정권이 추진한 경제개발계획은 주요 기간산업(전력․석탄․정유․비료․제철)과 노동집약적 산업에 치중하고, 소비절약과 내핍을 강조하는 동시에 외자보다는 내자, 특히 정부 재정부문의 역할을 강조하며7%대의...
[학술논문] 북한의 1945~1960년 중공업 우선 발전전략에 대한 재고찰
...발전”으로 선정하면서 중공업 우선 발전전략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북한의 공식적 견해였다. 하지만 1945~1960년 북한 경제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중공업 우선 발전전략은 해방 이후 국가 건설과 함께 전개되었고, 당시 경제적 성과로 인해서 지속적인 경제노선으로 자리하였다. 북한에서 중공업 우선 발전전략은 식민지 공업화 유산에 의해서 비교우위적 요소부존도의 조건에서 전통적인 사회주의 공업화 강행전략과 다르게 중공업을 우선하면서도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중공업 우선 발전전략에 사회주의 조기완성에 대한 과욕이 결합되면서 경제운영의 경직성을 가져와 북한 경제의 침체를 가져왔다. 본 연구는 중공업 우선 발전전략이 오늘날 북한 경제노선으로 지속되는 역사적...
[학술논문] 해방 이후(1945~1950) 북한 방직공업 정책의 전개와 성격 - 식민지 경제유산의 계승과 극복 과정에 분단이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
...산업국유화 등 ‘민주개혁’ 조치 이후 1947년부터 인민경제계획에 의한 본격적인 경제부흥책이 시행되었다. 또한 과거 일본의 경제권 안에서 운용되었던 산업시설들을 변화된 조건에 맞추어 새롭게 재편성하는 과제도 함께 진행되었다. 38선 분할로 인하여 식민지 경제 유산이 남과 북에 차등적으로 존재하는 경제적 불균형성, 즉 더 많은 산업시설들이 남아 있는 조건은 북한의 적극적인 인민경제계획 추진을 뒷받침하였다. 1930년대 조선공업화의 결과물들이 한반도 북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던 반면, 경공업에 있어서는 정반대였다. 특히 방직공업의 경우, 직물 제조의 기본 과정인 방적설비의 대다수가 한반도 남부 지역에 위치하여, 38선 이북에는 15.1%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북한 지도자들은 우선 38선 이북에...
[학술논문] 일제강점기 동해 어족 자원의 수탈과 활용
...글리세린이 바로 화약의 원료가 되기 때문이었다. 1935년 당시 소비된 글리세린의 전체 양 중 절반에 가까운 43%가 다이나마이트 및 해군의 화약용으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일본 유지공업의 팽창은 식민지 공업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일본의 신흥 재벌인 日窒콘체른에 의해 朝鮮窒素肥料株式會社, 朝鮮油脂株式會社 등이 설립되어 興南과 淸津에 공장을 건설하였다. 또한 이들 공장에 운영에 필요한 다량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赴戰江 발전소와 같은 발전시설이 건설되었다. 즉 북한 일대를 주산지로 하는 鰮油業의 발전이 식민지 조선의 유지ㆍ화학공업 및 토목ㆍ전기 산업 발전의 모체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 자본의 침투는 식민지 권력의 군사산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진행된 것으로 식민 조선의 공업에 새로운 계기를 이루었다.
[학술논문] 비단섬의 갈대밭: 북한의 갈섬유공업 연구
갈대를 원료로 뽑아낸 인조섬유인 갈섬유 생산의 공업화는 비날론 공업화와 함께 북한에 풍부한 원료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화학부문에서의 자립적 토대를 이룬 성과로 평가돼 왔다. 이 논문은 북한의 갈섬유공업이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했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식민지 유산과의 연속성을 밝히고 이어 주체담론의 물질적 매개이기도 했던 비날론으로 만든 옷 생산에도 기여한 측면을 드러낸다. 갈섬유를 세계최초로 공업화했다는 북한의 선전과 달리, 갈을 이용해 인견펄프를 제조하고 스프를 생산하는 공정은 일제가 신의주, 평양 지역에서 이미 시작했었다. 이러한 식민지 유산 속에서 북한의 갈섬유생산 공업화가 이뤄졌지만, 이는 북한의 민족주의적 공식서사에서 사라졌다. 또한 갈로부터 뽑아낸 스프직물은 비날론과 혼방되어 양복천으로 생산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