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냉전기 일본 진보파 지식인의 한국 인식 - 『세카이』의 북송·한일회담 보도를 중심으로 -
...후반부터 60년대 전반까지의 시기에 표출된 아시아 인식의 일환으로서 한국 인식을 검토한다. 특히 재일조선인 ‘북송’과 한일회담에 관한 보도에 초점을 맞추어 그 구체상을 검토하였다. 이 시기 일본의 진보파 지식인들은 남북한 이원론에 입각해 북송을 지지하고 한일회담에 반대하였다. 세카이는 북한 방문기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북송이 재일조선인 추방사업이라고 하는 인식은 결여하고 있었다. 한편 한일회담에 대해서도 대미 자립 외교, 신식민주의적 자본 진출 비판, 분단 고착화 저지, 동아시아 평화 유지 등을 내걸고 반대의 논진을 폈지만, 남한의 반대 이유였던 식민지 지배의 책임 문제에 대한 인식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현저히 결여되어 있었다.
[학술논문] 사할린 한인 귀환을 둘러싼 배제와 포섭의 정치 - 해방 후∼1970년대 중반까지의 사할린 한인 귀환 움직임을 중심으로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 이승만 정권은 사할린 한인의 문제를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의 문제로 제기하지 못했다. 단지 북한과의 체제경쟁 속에서 일본의 ‘재일조선인 북송문제’를 비난하면서 사할린 한인의 한국 귀환을 요구했다. 이러한 입장은 사할린 한인 문제를 식민지 지배책임의 문제라기 보다 냉전의 문제로 치환되는 원인이 되었다. 일본 또한 사할린 한인의 문제에 무관심과 무성의로 일관했다. 한국과 일본의 이러한 태도가 사할린 한인을 방치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할린 한인 귀환문제가 한국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게 된 것은 한일협정이 체결된 직후인 1966년부터이다. 이것도 한국정부의 일본에 대한 식민지 지배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라기 보다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에 대한 일종의...
[학술논문] 일조우호 운동과 한일회담 반대운동 ―일본조선연구소의 식민지 지배책임론에 대한 고찰
본고는 일본조선연구소의 식민지지배책임론을 중심으로 한일회담 반대운동과 일조우호운동의 상관관계를 고찰하였다. 일본조선연구소는 한일조약 비준후에 일본정부가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 탄압의 일환으로 시도했던 외국인학교제도 설립 반대 운동의 논리로서 일본인의 가해성에 대한 반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외국인학교제도 설립 반대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일본조선연구소가 전개한 이러한 논리는, 일본조선연구소가 한일회담 반대 운동을 수행하면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일본의 식민주의에 대한 철저한 투쟁을 통해 조선에 대한 차별의식을 극복하지 않으면 한일회담 반대 운동은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논리의 계승이자 발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종래에는 당파적 대립으로 간주되어 온 일본조선연구소의 리더 데라오 고로와 공산당 간의 갈등의 근저에...
[학술논문] 전후 일본에서의 조선근대문학연구의 성립과 전개-<조선문학의 회>를 중심으로-
이 글은 <조선문학의 회(朝鮮文学の会)>를 중심으로 전후 일본에서 일본인의 한국근대문학연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핀 것이다. 196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식민주의 또는 식민지 지배 책임의 자각 위에서 스스로를 기존의 ‘조선학’과 구별하고자 하는 시대적․집단적 흐름이 생겨났고, 외국학으로서의 ‘조선근대문학연구’도 그 새로운 흐름 속에서 태동했다. 1960년대 초반 일본조선연구소의 문학연구회와 <조선문학의 모임>(1963~64) 그리고 1960년대 중후반의 독서모임과 문학사모임을 거쳐 1970년 <조선문학의 회>가 결성된 것이다. ‘일본인의 조선문학연구’, ‘하나의 조선문학’을 표방한 <조선문학의...
[학술논문] 냉전기 재일조선인들의 ‘동서’ 횡단 이동과 인권 담론
...재일조선인의 북한으로의 귀국 행렬은 ‘사회주의 나라들의 승리’로 선전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이후 급격히 쇠퇴하였고, 반대로 남한에서는 1975년부터 총련계 재일조선인들의 모국 방문 사업이 전개되어 ‘인도주의의 승리’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총련계 재일조선인의 분단된 고국의 남북으로 향하는 두 개의 흐름은 귀환권이나 이동권이라는 인권에 기초했다기보다 남북한 사이의 체제 경쟁이라는 정치 문제에 기인한 것이었다. 인권 담론이 지극히 정치적으로 행사된 것은, 재일조선인에 대한 식민지 지배 책임과 의무를 사장시킨 채 그들의 재입국 없는 북한 귀국을 정당한 인권 행사로 옹호한 일본이, 북한 거주 일본인 아내의 이동권 향유에 소극적으로 임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