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南北國時代論과 渤海 Diaspora
...통해 일체화시켜 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남북국시대의 확장을 통해 유득공에 의해 제기된 남북국시대론을 분단시대에 계승하여 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근현대 한민족의 만주와 연해주이주 디아스포라는 바로 남북국시대의 최종단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 남북국시대론의 의미는 발해를 한국사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 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조선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종합적으로 인식된 남북국시대론은 우리나라의 자생적 이론이요, 현대에서도 유효한 논의임을 재확인하였다. 이글에서는 논지 전개를 위해 현재 각 분야에서 새롭게 조명받는 Diaspora(디아스포라) 관점을 적용하여 보았다. 나아가 이 관점은 어느 특정 민족의 근현대 시기 이산에 한정시킬 수 없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남북국시대론의 범위 확장처럼, 코리아...
[학술논문] 실학자들의 新羅史 연구 방법과 그 해석
...토대가 되었음을 살펴본 것이다. 다 아다시피 한백겸 이래 실학자들은 시간의 변화에 따른 疆域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신라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이러한 이해는 기왕의 史書가 시간을 軸으로 역사의 변화를 추적한 것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실학자들은 국가의 발전과 지리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삼국사기』이후의 史書에서 신라를 앞세웠던 역사서술을 극복하였고, 삼국의 성립을 고구려, 백제, 신라 내지는 고구려, 신라, 백제 順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실학자들은 국내외의 광범위한 자료뿐만 아니라 금석문 자료를 통해 신라사 내용을 보완하였다. 또한 한백겸 이후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史實 考證에 입각한 역사 기술이 강조되었다. 이에 실학자들은 사서 및 史料를 비판하였으며 사실을 고증하였는데, 안정복의...
[학술논문] ‘실학實學’ 개념의 적합성 또는 부적합성에 관한 연구
...기울이는 양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실학의 개념이 확정적일 수 없는 까닭에 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러한 실학의 개념이 가지는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기본적으로 조선조 중후기에 펼쳐졌다는 실학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통섭할 시대정신을 포착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실학자로 거명되는 인물들 간의 교류와 연대는 매우 희미하다. 기껏해야 북학파로 일컬어지는 일단의 그룹 정도가 실제적 유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실학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심에서 탈락 또는 이탈한 지식인들이었다. 아니면 명문가 소속이면서도 스스로 변방을 택한 사람들이었다. 현실과의 접점 또한 마련되지 않았던 탓에 이들의 사고는 이미 유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예단되어 있었다. 따라서 실학이라는 틀을 원용하여 조선조의 사상사를...
[학술논문] 申采浩 前後三韓說의 의의
...경위와 의의를 검토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신채호는 1908년 발표한 『독사신론』에서 부여족이 남하하여 한강 이남의 토족(土族)을 정복 혹은 흡수하여 백제, 신라, 가야를 건설하였다고 보았다. 이는 전삼한의 주민이 남하하여 후삼한을 건설하였다는 논리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전후삼한설의 원형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 실학자 한백겸은 한강을 경계로 그 이북과 이남의 역사가 독자적으로 전개되었다고 파악하였고, 이 설은 크게 유행하였다. 이에 대해 신채호는 단군조선-전삼한-후삼한의 계보를 설정하였다. 이로써 양 지역 역사의 독자적 전개를 부인하고, 부여, 고구려는 물론 백제, 신라, 가야까지 모두 단군조선을 계승한 나라임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셋째, 신채호는 방대한 영토와 뛰어난...
[학술논문] 권태휘의 생애와 민족운동
...하였다. 한편 그는 동아일보, 천도교, 기독교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추진하던 자치운동을 좌절시키고자 사회주의단체 및 비타협적 민족주의세력을 결집하였다. 그리고 1927년부터 1931년까지 신간회를 조직하고 그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후 그는 신조선사를 설립하고 잡지 『신조선』의 속간, 『정다산전서』, 『담헌서』 등의 실학자의 문집을 간행함으로써 조선문화를 수호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그가 운영하던 신조선사는 안재홍과 정인보 등의 조선학운동을 돕는 버팀목이었다. 해방 후 그는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이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런데 그는 1945년 9월 안재홍과 결별하고 화요회에 연원을 둔 재건파 조선공산당계 인물과 연결을 맺고 인민공화국에 참여하였다. 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