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극동에서 소련의 전략적 이익보장: 한국전쟁의 기원과 스탈린의 정책결정 동기
...북한이 무력을 사용하여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극력 저지했으나, 1950년 1월 말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김일성의 주장을 적극 지지했다. 미국의 한반도전쟁에의 간섭 여부는 전쟁을 결정하는 조건이었을 뿐, 미국의 개입 유도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미국의 관심을 동아시아로 끌어들인 것은 전쟁의 결과였지, 결코 한국전쟁을 결정한 동기가 아니었다. 또한 아시아혁명을 고무하고 촉진하는 것 역시 일종의 표면적 현상이었을 뿐 소련 외교전략의 전환은 아니었다. 1950년 중소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의 체결로 인해 소련은 태평양으로 향하는 유일한 항구와 부동항을 상실했고, 이것은 의심할 것 없이 중대한 전략적 이익의 손실이었다. 그 결과 소련은 아시아에서 전략상 거점을 상실하게 되었다. 결국 스탈린이 김일성의 전쟁 개시에 동의했던...
[학술논문] 베트남전쟁 시기 북한의 대외정책
...목소리는 낮추고, 아시아 혁명적 인민들의 반제공동투쟁, 반미반일투쟁을 강하게 촉구했다. 한편 북한은 베트남전쟁 초기 남한에서 반전의식을 매개로 남조선혁명의 기운이 무르익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남한의 반전운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모험주의적 군사행동 탓에 남조선혁명 가능성이 더욱 낮아지자 박정희 정부와의 대화노선으로 전환했다. 더불어 미군이 1973년 3월 베트남에서 완전 철수하자 7·4남북공동성명의 반외세 조항, 베트남에서 미군의 완전 철수 등을 명분으로 삼아 미국에게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완전 철수 등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 동북아시아에서 거의 외교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국가들, 아시아의 혁명적 나라들은 북한의...
[학술논문] ‘탈냉전’ 시대 동아시아 북방학의 가능성
...개념과 범주에 기대어 실은 패권적 패러다임인 ‘냉전’과 ‘탈냉전’ 패러다임 자체를 심문하고 해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남한의 이북으로서 북방이란 북한을 포함하여 중국, 몽골, 소련 및 동구의 공산권 국가들을 가리킨다. 북방은 사회주의적 이념과 실천의 연쇄, 그리고 상호연대를 통해 구축된 관계적 구성물이었다. 사회주의적 이념과 실천의 연쇄라는 점에서 북방 범주는 또한 남한과 일본, 대만,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의 혁명과 민족해방운동으로 확장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동아시아 북방학을 제안한다. 동아시아 북방학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토대로 북방의 트랜스내셔널한 연대의 사상과 실천을 교훈삼아 현실개혁의 동력으로 삼는 학술적 실천이며 지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학술논문] 중국의 북한과 베트남 정책 비교 연구, 1949~1964
본고는 중국 주변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과 베트남에 대한 정책을 1949년 신중국 수립 전후시기부터 1954년 제네바 회담까지의 기간을 하나로, 1960년 전후시기부터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직접 개입했던 1964년까지의 기간을 다른 하나로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그 두 기간 중국의 북한과 베트남에 대한 지원과 개입은 중국이 아시아 혁명세력을 위해 국제주의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북한과 베트남에 대한 정책을 중공의 혁명성이 발현된 결과로서만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중국혁명의 완수와 신중국의 수립은 중공의 정체성이 '혁명정당'에서 '집권정당'으로 전환됐다는 것을 의미했고, 중공정권이 당면했던 최대의 국가적 과제는 혁명의 확산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