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식민주의적 고조선사 인식의 비판과 과제
일본의 식민주의적 고조선사 인식은 단군부정 연구와 한사군 역사지리 및 낙랑군연구로 집약되어 있다. 먼저 檀君에 대해서는 관련 사료가 고려시대 이후 출현하고 있다는 문제를 부각하여 고려시대 불교적 인식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신화로 규정하여 단군말살을 기도하였다. 또 일부에서는 단군을 일본 天照神의 동생이라 하여 일본신화로 왜곡하기도 하였다. 이같이 단군을 말살하거나 왜곡한 것은 단군이 국권회복의 구심점으로 부각되자 단군을 역사에서 제거하여 식민통치를 원활히 하고 내선일체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키 위한 기도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고조선역사에 대한 검토는 철저히 외면한 채 한군현과 낙랑관련 연구만을 진행해 우리 역사의 독자적 출발과 한제국과 맞서 싸웠던 강력한 국가 고조선을 제거하고 한국의 역사는 漢나라의
[학술논문] 리지린의 <고조선연구>와 북경대 顧詰剛교수와의 관계
...고조선 요동중심설을 중국학계가 동조하거나 적어도 용인하였음을 공인받기 위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였다. 리지린의 『고조선연구』에 나타난 내용을 검토하면 고조선 요동설의 논리를 체계화하고 학술적 토대를 강화하려는 목적하에 력사연구소 고중세사실에서 리지린의 중국유학을 추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리지린으로 대표되는 고조선 요동설이 중국 고대사분야의 대표적 존재인 고힐강교수의 지도를 받아 고조선의 역사공간이 중국 동북 3성지역 일대뿐만 아니라 중국 북방지역의 광대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었음을 부각하는 리지린의 논문을 박사논문으로 통과시켜 북한의 고조선 요동설을 학술적으로 인정받고 관련 당사국인 중국의 공인을 받아 국제적 공신력을 확보하는 정치적 결과도 목적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주목되는 점은 리지린의 고조선관련...
[학술논문] 「朝鮮人民歷史講座」(1950)과 歷史敎育-樂浪郡의 위치비정을 중심으로-
...또 오랫동안 중국의 식민지 내지는 그와 비슷한 처지였다는 歷史像을 교육하여 일본의 식민 지배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조선인민력사강좌」에서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이 요동에 있었다고 하여 이를 부정하였다. 1950년 전후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종래의 ‘낙랑평양설’을 부정하고, 낙랑을 비롯한 한사군의 위치를 요동에 비정하는 설이 대두하였다. ‘낙랑요동설’은 논쟁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민력사강좌」에 채택되는 등 정설처럼 되었다. 이는 새로운 국가의 새 서울인 평양이 과거 ‘식민지’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근대 민족주의의 ‘영토순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학술논문] 남·북한 단군인식의 비교연구 -신석호와 리지린을 중심으로-
...구축했다. 반면 북한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식민사관 청산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리지린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북경대에서 수학했는데, 그의 스승은 고사변학파를 이끄는 고힐강이었다. 리지린의 박사 논문 주제는 고조선이다. 고힐강은동북 3성이 고조선의 영토였다는 리지린의 연구에 우려를 표했는데, 그것은역사가 정권과 영유권의 정당성에 대해서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당시 북한에서는 고조선 중심지 설을 두고, 요동설과 평양설이 맞섰으나 리지린의 연구로 요동설이 확정되었다. 리지린은 단군을 통치자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며, 단군신화에는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현재 북한에서는단군신화가 고조선의 형성과 발전과정, 종족문제 그리고 역사지리문제를 포함한 고조선 건국과정을 반영한 신화로 인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