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최명익 수필집 『글에 대한 생각』 연구
...폭력성을 비판했던 최명익이지만 해방을 기점으로 북한문단의 중심으로 나아갔고, 문학세계 역시 변모할 수밖에없었을 것이다. 최명익은 긍정적 민중상을 발견했고, 글에 대한 열정을 인민예찬의 역사소설 쓰기에 쏟는다. 최명익은 역사소설 속에서 줄곧 “인민례찬”을 이야기했고 그 근거를우리 민족의 “의리”에서 찾았다. 최명익은 주체의 자각이 들어있는 “의리”야말로 인민중심의 역사를 추동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급변하는 북한문학계의 변화 속에서 최명익의 인민예찬 문학론은 설자리를 잃었고 이후 그의 자취는 사라지게 된다. 중요한 사실은 급변하는 역사의질곡 속에서도 최명익이 꾸준히 작가로서의 사명을 다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글에 대한생각『글에...
[학술논문] 1960년대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의북한 귀국 양상과 의미-조양규의 사례를 중심으로-
재일 조선인의 북한 귀국운동은 1959년에 시작되어 1967년에 일시 중단되었다가 1971년에 재개되어 1984년까지 진행됐다. 특히 귀국자가 집중된 기간은 1967년 이전까지로 1959년 12월 14일 제1차선이 출항한 이래 1967년 제154차선까지 약 8년간 88,360명이 귀국했다. 당시 재일조선인의 북한 귀국사업에 호응해 북행을 택한 재일조선인 화가는 대략 15명 내외로 추정된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김승희, 김보현, 표세종의 경우에서 보듯 북한미술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오늘날까지도 북한미술의 원로로 대접받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북한미술의 주류에서 밀려나 잊혀졌다. 후자의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조양규다. 이미 1950년대 후반 일본 미술계에서 영향력있는 작가로
[학술논문] 폴란드 사회주의리얼리즘 소설에 반영된 한국전쟁과 한국의 이미지
세계사에 유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은 한국전쟁은 폴란드의 사회주의리얼리즘 문학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홍보하는데 있어 한국전쟁만큼 극적인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품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폴란드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각별한 관심과 우호적인 감정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1950년대에 발표된 사회주의리얼리즘 계열의 폴란드 소설 가운데, ‘한국전쟁’을 테마로 한 4권의 책 -『소년 연락병 김애조』(1951), 『다시 찾은 어린 시절의 집』(1953), 『나이팅게일의 무리』(1954), 『어둠 속의 광채』(1956)를 분석 텍스트로 설정하여, 작품 속에
[학술논문] 강호(姜湖 1908~1984)의 문예비평
카프(KAPF)의 핵심 맹원으로서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 연극, 미술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활동을 펼쳤던 강호(姜湖 1908~1984)는 1946년 월북한 이후 미술가, 비평가로서 북한 영화미술 및 무대미술 분야의 실천과 담론을 주도했다. 특히 1957년 「카프 미술부의 조직과 활동」으로 본격화된 그의 비평 작업은 1960년대 절정에 달해, 이 시기 『조선미술』, 『조선예술』, 『조선영화』 등 다양한 지면에 발표된 그의 글은 20편이 훌쩍 넘는다. 1960년대 강호의 문예비평은 초기 북한문예가 사회주의리얼리즘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확인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일 뿐 아니라 ‘카프’로 대표되는 식민지 프롤레타리아 문예가 북한문예와 연결되는 지점을 확인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학술논문] 고유색과 자연색: 1960년대 북한 조선화단의 ‘색채’ 논쟁
본 논문은 1960년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 『조선미술』을 모태로 전개된 북한 조선화단의 색채 논쟁을 검토하여 북한식 조선화의 전형과 특이성이 생성된 양태를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60년대 북한 조선화단의 색채 논쟁은 처음에는 수묵화에 반대하면서 채색화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이후 고유색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색채 수준에서 인상주의로 대표되는 자연주의, 기록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리얼리즘 회화를 구현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것이 바로‘ 고유색’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유색의 개념적 성향에 반대하면서 자연색을 옹호하는 반론이 제기되었고, 논쟁의 전개과정에서 고유색은 공식적으로 부정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실주의의 한계선을 견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