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국 소설 속에 나타난 인민재판의 양상 - 황순원ㆍ장용학ㆍ조정래의 소설을 중심으로 -
한국 소설 중 인민재판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 것으로 황순원의 장편소설 ≪카인의 後裔≫(1954), 장용학의 단편소설 <요한詩集>(1955), 조정래의 대하소설 ≪太白山脈≫(1986)이 있다. 세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인민재판’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았다. 그런 연후에 세작가의 인식 차이를 살펴봄으로써 인민재판의 실제적인 효과, 그리고 작가의 폭력 이해에 대해 고찰하였다. 북한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월남한 황순원은 북한에서 행해진 인민재판이 지주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사용되었음을 ≪ 카인의 後裔≫를 통해 보여주었다. 북한에서의 인민재판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가는 보이는 폭력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폭력도 무서운 것임을알려주었다. 장용학은...
[학술논문] 거제도포로수용소의 9ㆍ17폭동 연구
...‘9ㆍ17폭동’에서 천도교 포로 14명 내외가 살해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NARA문서에서 ‘9ㆍ17폭동 사료’가 발견되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었다. 이 사료에는 한 박찬호 등 15명의 포로가 강만인 등 친공포로에 의해 북한에서 천도교청우당 활동 등 반공활동을 빌미로 인민재판을 열고 막사 폴대 등으로 무참히 학살하였다. 천도교 포로가 학살된 이유는 송환거부 혈서 작성이었다. 천도교는 해방후 북한에서 자주국가 건설을 위해 북한 정권과 연합전선을 펼쳤지만 사회주의 체제가 공고화되면서 배제되었고 이것이 북한 천도교인의 반공 활동과 포로의 송환 반대로 나타나 친공포로에 의해 살해되었다. 85수용소에 발생한 ‘9ㆍ17폭동’은...
[학술논문] 황순원 소설에 나타난 희생양 메커니즘 연구
...욕구 불만과 불안을 희생양에게 쏟음으로써 대리만족을 얻는다. 작가는 희생양 메커니즘이 발동되는 방식을 다양한 소재를 다룬 단편들을 통해 알레고리적으로 제시한다. 『카인의 후예』는 해방 직후 북한의 토지 개혁을 다룬 작품으로, 작가가 견지해온 희생양 메커니즘에 관한 문제의식을 실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상화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군 인민위원회가 주도하는 인민재판의 과정에 참여하는데, 이때 이들은 서로를모방하며 만장일치적 합의에 도달한다. 인물들의 이러한 모방 욕망은 새롭게 등장한권력층의 도구로 활용된다. 공작 대원들의 선동과 강요 아래 지주들이 숙청되어가는과정 속에서 대부분의 소작인들은 권력층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재생산해나간다. 군인민위원회는 반동의 죄목을 들어 박해의 명분을 만들어내고 집단 구성원들의 모방욕망과...
[학위논문] 북한의 사법·치안체제와 한국전쟁
이 논문은 해방이후 북한의 사법치안체제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운용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며, 제도적 실체로서 사법·치안 조직의 개편과정과 법의 운용, 그리고 해방이후 한국전쟁 초까지 ‘반동분자’에 대한 대책과 처리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 내용을 네 가지로 나누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북한의 사법치안체제가 형성되기 전의 전사로서 군중재판은 해방직후 북한에서, 한국전쟁 초기에 남한점령지역에서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이 재판은 당시 인민의 ‘적’으로 인식되었던 일제부역자, 반동분자를 처벌하였다. 그리고 북의 사법치안체제는 군중재판을 자연스럽게 수용하였지만 남한의 군중재판은 체제내로 흡수되기 전에 북한군 후퇴가 시작되어
[학위논문] 북한의 사법·치안체제와 한국전쟁
이 논문은 해방이후 북한의 사법치안체제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운용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며, 제도적 실체로서 사법·치안 조직의 개편과정과 법의 운용, 그리고 해방이후 한국전쟁 초까지 ‘반동분자’에 대한 대책과 처리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 내용을 네 가지로 나누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북한의 사법치안체제가 형성되기 전의 전사로서 군중재판은 해방직후 북한에서, 한국전쟁 초기에 남한점령지역에서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이 재판은 당시 인민의 ‘적’으로 인식되었던 일제부역자, 반동분자를 처벌하였다. 그리고 북의 사법치안체제는 군중재판을 자연스럽게 수용하였지만 남한의 군중재판은 체제내로 흡수되기 전에 북한군 후퇴가 시작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