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재북한일본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북한의 일본인기술자 정책(1945~1950)
...식견있는 조선인들조차 일본인 학대로까지 발전한 반일행위의 이면에 복수심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그것이 “민족 배외주의”의 징후에 다름 아니라고 진단했을 정도였다. 이 연구는 그러한 반성을 겸허히 수용하고 있지만, 일본측이 집착하고 있는 부당한 문제제기들의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본다. 과연 일본측의 주장대로 해방 후 일본인기술자들은 북한에 강제 억류되었던 것일까? 또한 일본인들의 사유재산이 불법적으로 북한측에 몰수되었다는 점만이 진실의 전부일까? 이 두 가지 민감한 문제들은 북한당국과 재북일본인 양자 간 문제라기보다 소련측까지 얽힌 매우 복잡한 문제였다. 이 연구는 그러한 3자 간 이해관계를 상세히 규명함으로써, 일본측의 논리가 이미 사실관계에 오류를 내재하고 있음을 밝히려...
[학술논문] 해방 직후 북한 철도시설의 실태와 복구양상 (1945~1948)
...북한의 철도가 해방 이후 빠르게 정상운행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부터 시작된 일원화된 업무지시체계가 근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직후 설치된 북조선 행정 10국 교통국이 철도의 복구에 매진하였고, 이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교통국이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아 철도운영에 대한 지침을 만들었다. 이와 동시에 기술인력 양성기관을 세워 일본인기술자들의 공백을 채웠다. 이렇게 양성된 철도기술자들과 철도노동자들은 기술 교육과 동시에 정치교양교육을 학습받았다. 이후 이들은 <생산돌격운동>을 벌여 철도자재확보와 철도운송에 있어 100%가 넘는 성과를 달성하게 되었다. 즉, 국가의 일원화된 체계 속에서 정치사상으로 교육받은 노동자들의 생산활동과 <생산돌격운동>이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학술논문] 해방 직후 북한의 과학기술 교육기관 설립과체제형성(1945~1950)
...벗어나 과학기술 교육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끼친 다양한 요소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북한의 과학기술 교육은 식민지 시기의 인적·물적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이전 시기와 밀접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북한은 소련의 사회주의식 교육체제를 흡수하여 과학기술 교육기관과 정책을 수립하였고, 잔류 일본인 기술자들의 기술 교육으로 인해 빠르게 공장 복구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외부적인 요소만 과학기술 교육 전개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북한은 자체적으로 필요에 따라 새로운 과학기술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교육제도를 변용하였다. 해방 직후 형성되었던 북한 과학기술 교육은 이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점을 종합적으로이해할 때 그 본질에...
[학술논문] 해방 직후 북한 과학기술 교육기관 교원의 충원과 구성(1945~1948)
...살펴보고자 하였다. 해방 직후 중공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삼은 북한은 각 공장을 운영할 기술자가 부족함을 자각하고, 단기적 대안으로 남한의 과학기술자 월북 사업과 잔류 일본인 기술자의 유용(留用)을 결정하였다. 이렇게 잔류한 일본인 기술자들은 공장 복구뿐만 아니라 일부는 교육 사업에 투입되어 각종 기술원양성소와 기술전문학교, 공업대학 등에서 교원으로 임용되었다. 이들은 북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기술교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북한의 정치사상적 안정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 기술자로서 기술교육만을 담당하는 일본인 기술자들과는 달리 민족간부를 양성하는 기관인 대학에 임용된 조선인 교원들은 정치사상적 교양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공업대학 교원들의 경우 일제시기 독립운동이나 정치 운동을...
[학술논문] 해방 직후 재북일본인 법적 상황과 성격(1945~1948): 북한의 차별적 대우를 중심으로
1945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지배자에서피지배자로 신분이 변화하였다. 게다가 38도선을 기준으로 이북지역에있던 일본인들과 이남지역에 있던 일본인들의 상황도 조금씩 다르게 전개되어 나갔다. 이 글에서는 이북지역에 잔류해 있던 ‘재북일본인’을 중점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의 존재가 북한에서 기록으로 남기기꺼려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자료가 부족하고, 당시 북한에 잔류해 있다가일본으로 돌아간 일본인들조차도 이념적인 문제 때문에 북한에서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재북일본인들의당시 상황을 재현한다는 1차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객관적이라고할 수 있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들이 북한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