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북한 역대 정권의 당군 관계 변화 및 현재적 의미: 역사적제도주의적 관점을 중심으로
일본이 세계 제2차대전에서 항복하면서 북한지역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였고 연이어 김일성이 입국함과 동시에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동시에 후일 북한군으로 발전하는 군사조직을 설립하게 되었고 이 군사조직이 더욱 체계화되면서 한국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북한군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크게 한국전쟁 이전과 한국전쟁 이후 그리고 김정일, 김정은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변화는 군대의 위상과 역할이 달라진다는 점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도 그 저변에 있어 변치 않는 흐름은 김일성을 비롯한 독재자 개인의 사병화된 군대라는 사실이며 당군 관계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성향은 철저히 적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역사적제도주의는
[학술논문]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UNC)의 전력 창출에 관한 연구: 현대전쟁을 통해 본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 참여 배경을 중심으로
북한이 제 6차 핵실험, 신형 ICBM급 화성-15형 발사 이후 ‘핵무력 완성’ 선포 등 연이은 대미 전략적 도발에 대해, 미국은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을 의식한 극도의 예민한 반응과 함께 ‘군사적 조치’ 가능성을 연일 내비치고 있어 작금의 한반도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매우 엄중하다. 유비무환의 자세로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야 할 때이다. 2000년도를 전후하여 미국이 치룬 걸프전쟁과 아프간전쟁, 이라크전쟁 등 주요 현대전에서 미국의 요청에 의거 다국적군에 참여한 국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초강대국 미국과의 압력과 강요에 의해, 또는 미국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자국의 정치·안보·경제적 실리를 추구할 목적으로, 미국의 정치·경제적
[학술논문] 김정은 정권의 정치적 상징전략에 관한 연구: ‘핵무력 완성’ 선언을 중심으로
2013년, 1994년 이후 처음으로 신년사가 북한의 청치지도자인 김정은에 의해 낭독되었는데, 이때 그는 “당과 인민이 나아갈 불변의 진리는 오직 주체사상”, “혁명의 백전백승의 가치는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라고 하면서 선대의 유업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에 있어 통치철학 및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선군정치”는 그 의미가 희석되었으며 이후 점점 그 존재감을 상실하여 갔고 급기야 최근 2018년 신년사에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북한에 있어 정치적 상징화는 커다란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찍이 김일성정권 시부터 북한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상징전략을 사용하여 왔는데,
[학술논문] 북한의 핵무장과 역대 한국정부의 군사대응정책 연구
북한은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며 신뢰해 줄 것을 국제사회에 요구하고 있으나 객관적 정보를 다루는 전문가들은 북한의 신뢰도를 낮게 평가하고 있으며 북한이 최소 20개 이상의 핵무기와 다종의 운반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 의도를 분석할 때에 전문가들은 주로 전망이론과 군사적 방어목적설로 설명해왔으나 북한의 생존과 안전보장을 국제사회, 특히 한-미가 지속적으로 약속했고 준수해왔다는 점과 핵무기의 본질과 성격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설명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능력을 현실적으로 고려하고 핵무장 의도를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비핵화 사례연구와 분석의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1962년 10월 쿠바의 핵미사일 위기사례를
[학술논문] 한·미 및 조·중 연합군사지휘체제 비교 연구 : 역사적 제도주의 관점을 중심으로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한민족은 또 다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하였다.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킨 연합군은 남한에서는 미군이, 북한 지역에서는 소련군이 군정을 시작하면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은 김일성이 통치권의 전면에 나서면서 소련의 지원을 통해 군사력을 점차 증강하고 급기야 한국전쟁을 일으켜 한반도를 공산화 하고자 하였다. 초기에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군에게 유리한 전세가 조성되었으나 유엔군의 반격에 전황은 반전되었으며, 북한군은 불리한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중공군의 지원을 받아 조중연합군사령부를 구성하였다. 이에 반해 한국의 이승만 정부는 개전 초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세를 점하고 있는 북한군을 방어하고자 미국과의 활발한 접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