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안중근연구의 현황과 쟁점
...그리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새로운 평화체제를 모색하는 이론적 길잡이로 본 최태욱 등의 주장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동양평화론에 대한 연구는 서용․마키노 에이지 등 중국과 일본의 연구자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안중근의 대외인식에 대한 연구’도 진전되었고, 그 중심은 일본에 대한 인식이다. 이는 학계의 중요한 논쟁점 중에 하나이다. 장석흥 등은 안중근이 인종론적인 입장에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지지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신운용이 안중근의 일본관은 명성황후시해사건을 계기로 점차확대 발전하여 이토를 처단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였다. ‘안중근의거에 대한 인식’은 크게 국내와 국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국내의 인식은 한국 천주교 인식과 비천주교의 인식으로 나누어...
[학술논문] 광복 후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의 경과와 역사적 검토
이 글은 광복 후 70여 년간 안의사유해찾기의 과정을 정리하고, 향후 과제를 전망하고자 한 것이다. 광복 후 안의사유해의 봉환을 처음 제기한 것은 1946년 3월 안의사 순국 36주기에 맞추어 우덕순 등이 성립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였으나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안의사유해찾기에 누구보다 고심하던 백범이 1949년 서거하고, 6·25전쟁 이후 남북 대립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안의사유해찾기는 관심에서 오랫동안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안중근의사의 동상이 남산에 세워지고, 순국기념일에 추모식을 거행하면서도, 안의사유해찾기는 엄두를 내지 못한 채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1980년대 들어 중국 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국교수교 전이라 해도, 민간차원의 방문이 허용되면서 안의사유해찾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