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전화황(全和凰)의 생애와 예술 ─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의식의 조형화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nature of consciousness and image formation in the creative processes of the Korean-Japanese people in the postwar Japan by examining the life and art of a Korean-Japanese painter, Chun Hwa-hwang(1909~1996). The preceding studies on Chun is extremely limited to the articles on art magazines and the essays on his catalogues where his works are overviewed in
[학술논문] 1960년대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의북한 귀국 양상과 의미-조양규의 사례를 중심으로-
재일 조선인의 북한 귀국운동은 1959년에 시작되어 1967년에 일시 중단되었다가 1971년에 재개되어 1984년까지 진행됐다. 특히 귀국자가 집중된 기간은 1967년 이전까지로 1959년 12월 14일 제1차선이 출항한 이래 1967년 제154차선까지 약 8년간 88,360명이 귀국했다. 당시 재일조선인의 북한 귀국사업에 호응해 북행을 택한 재일조선인 화가는 대략 15명 내외로 추정된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김승희, 김보현, 표세종의 경우에서 보듯 북한미술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오늘날까지도 북한미술의 원로로 대접받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북한미술의 주류에서 밀려나 잊혀졌다. 후자의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조양규다. 이미 1950년대 후반 일본 미술계에서 영향력있는 작가로
[학술논문] 1960년 전후 재일조선인 미술가의 활동 —총련 기관지(紙)를 중심으로—
...바뀌며 곧 통일이 될 것이라는 희망 아래 개최를 계획했던 것이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와 중립입장의 『統一朝鮮新聞(통일조선신문)』은 문화제와 ‘련립전’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지만 민단 기관지 『民主新聞(민주신문)』은 보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민단의 단장이 또 다시 바뀌고 민단 내부에서 합동 문화제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총련의 지원으로 주어진 테마로 공동 제작과 미술전을 개최하고 있었으며 1962년에 『재일조선인 화집』까지 발행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북한의 ‘집단 창작’이라는 의도가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미술가들의 공동(합동)제작은 짧은 기간 내에 양성하기 어려운 미술가를 북한으로 흡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