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새로 찾은 이용악의 「보람찬 청춘」과 시 작품 연구 -「보람찬 청춘」과 「산을 내린다」 외 5편 분석-
...청춘』, 산문 「혁명사상으로 무장하련다」과 시 「산을 내린다」, 「앞으로! 번개같이 앞으로!」, 「피값을 천만배로 하여」 등은 정치적 부침없이 북한 문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한 월북 후 이용악 문학의 면모를 가늠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1955년에 발표된 『보람찬 청춘』은 전후 복구시기를 배경으로 전후 복구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옮긴 일종의 실화문학인데, 산문을 많이 남기지 않은 이용악의 작품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후의 복구 건설을 위해 대중동원과 함께 청년의 역할을 강조하던 당시 북한문학계의 요구에 충실한 작품으로, 해방 전 이용악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특유의 인물 형상화 방식이 잘 드러난다. 또 이용악 초기시에 나타난 서사성과 비탄적 서정성은 이 실화문학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학술논문] 『문학예술』에 나타난 폭격의 서사 ― 한국전쟁기 미국 폭격을 중심으로
...그러나 현대전에서 폭격은 교전국의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량학살과 다를 바가 없다. 이글은 남북 소설의 폭격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하여 먼저 북한의 폭격에 대한대응 양식을 살피고자 하였다. 한국전쟁기 미공군 폭격의 실체 및 북한 인민들의 폭격에 대한 인식을 살피기 위해 문학예술(1951.4~1953.8)에 실린 작품과 전후 복구기 소설을 중심으로 미공군의 폭격에 대해 검토하였다. 이 글에서는 작품에서 묘사된 상황을 통해 미공군의 폭격 방식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 방식과 대응 방식의 하나인 서사전략을살펴보았다. 그 결과 북한의 미군 폭격에 대한 대응 양상이 물리적․정신적 두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리적 측면은 미그기의 배치와 비행기 사냥꾼조의 조직으로...
[학술논문] 1950~60년대 북한소설의 지배 담론과 텍스트 평가의 균열 양상 고찰 -전후 복구기(1953)부터 유일사상체계형성기(1967)까지를 중심으로
이 글은 1953년 휴전협정 이후 1967년 유일 사상체계 형성기까지를 대표하는 네작품을 중심으로 1950~60년대 북한소설의 지배 담론과 실제 텍스트 평가의 균열 양상을구체적이고 미시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시기를 관통하는 문학 담론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학 사상과 함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조된다. 본고는 북한문학에서 도식주의 논쟁과 부르주아 사상 잔재 비판 등을 거쳐 당의 유일사상체계 형성을 강제하는 지배 담론과실제 텍스트 평가 사이의 균열 양상을 통해 문학사적 선택과 배제가 지니는 함의를 분석함으로써 북한문학의 유연성과 경직성을 검토하였다. 유항림의 「직맹반장」은 예술적 개성의 표출과 객관주의적 수법의 잔재라는 평가를 유동하다가 최종적으로 난관 극복의 긍정적 서사로 문학사에
[학술논문] 전쟁과 혁명의 수사학이 다다른 자리 : 남북문학예술연구회 엮음, 『전쟁과 북한 문학예술의 행방』, 역락, 2018_남북문학예술연구회 엮음, 『전후 북한 문학예술의 미적 토대와 문화적 재편』, 역락, 2018
...남북문학예술연구회가 펴낸 『전쟁과 북한 문학예술의 행방』 및 『전후 북한 문학예술의 미적 토대와 문화적 재편』에 대한 서평으로 작성된다. 먼저 『전쟁과 북한 문학예술의 행방』이다. 논자들은 ‘매체론적 입장’에서 전쟁과 혁명을 통한 북한 사회주의 건설의 형상과 흐름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를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통찰한다. 연구대상은 전쟁과 혁명에 관련된 시와 소설, 전장과 후방에 두루 뿌려진 삐라, 전투심과 애국심, 그리고 적개심을 고취하는 문화공작대 및 화선(火線)음악대, 미군의 무차별적 폭격과 비인간적인 세균전 등을 포괄한다. 이 논고들의 특징은 1차 자료와 다양한 텍스트에 근거하여 북한의 한국전쟁 당시와 전후 복구기의 생활과 이념, 문화예술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는 것이다. 또한...
[학술논문] 전후복구기 원산의 계획안과 재건, 1953-1963
원산은 김정은 시대 들어 이 도시가 가진 군사적, 경제적 가치로 인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증가하는 관심에도 불구하고, 현재 원산의 도시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연구는 1953년에서 1963년까지 원산의 도시계획이 변해간 모습과 그 변화의 이유를 추적한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는 원산의 초기 계획안은 소비에트 도시계획의 영향을 받아 이상적이고, 야심적인 규모로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인 재건이 시작된 1958년부터는 그 규모와 형태가 변했음을 주장한다. 재건이 진행되면서 원산의 규모는 일제강점기 도시의 범위로 줄어들었으며, 형태적으로는 도시가 가진 지리적 상황과 해안 관광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비대칭적이며 동적인 구성은 원산의 도시계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