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귀화의 에스닉 정치와 알리바이로서의 미국 -‘해방’ 이후 장혁주의 선택과 「아, <em>조선</em>(嗚呼<em>朝鮮</em>)」(1952)-
...달리 그는<em>�</em>아, <em>조선</em><em>�</em>을 통해 한국전쟁 중인 한반도의 조선인들을 향해 깊은 연민을보낸다. 이 확연한 온도 차이는 대타자인 점령 당국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공간 전이가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보다 더 실제적으로는1952년까지 국외 이동시에는 보장되었던 일본 국적으로 입국할 수 있던덕분이기도 했다. 결국 당시의 남북한 국민국가 체제 경쟁에 대한 의미있는 성찰과 비판조차도 ‘국민’의 신분을 획득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던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일본 국민의 신분으로 적정 거리를 두고 취재한 한국전쟁은 많은 조선인들이 난민으로 전락하는 비참한 현장이었다. 이 난민화하고 있는 조선인들의 현실을 수용소와 고아의 메타포를 통해 형상화한 것이 바로 그의 장편 <em>�</em>아, <em>조선</em><em>�</em>(1952)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