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연극/인의 월북: 전시체제의 잉여, 냉전의 체제화
연극인들의 월북이 대체로 이념과는 무관한 어떤 사정으로 기억되어야 했던 것은, 당대 스타급 배우들을 포함한 대규모의 정치적 이동을 어떤 식으로든 설명해야 했던 당혹감의 소산이었다. 사회주의자임이 당연시되었던 몇몇 연극인들을 제외하면, 월북연극인의 대부분이 대중연극에서 성장한 배우들이었고 그들의 ‘돌연한 변신’은 좀처럼 이해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극단(極端)은 ‘신파’와 ‘빨갱이’를 등가화하고, 여기에 ‘친일’의 과거를 소환하는 것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해방 직후 전 연극인의 9할을 상회하는 좌파의 기류는 이유 있는 결과였다. 조선연극의 정치경제학적 조건은 여전히 ‘해방’이 되지 않은
[학술논문] 연극인 박영호의 해방 이후: 희곡 <겨레>를 중심으로
본고는 희곡 <겨레>(1946)를 중심으로 해방 직후부터 월북 이전까지 남한에서 이루어진 연극인 박영호의 극작 활동을 파악하고, 작품 속에서 작가가 추구했던 ‘혁명적 리얼리즘’과 ‘살림으로서의 연극’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박영호는 해방 이후부터 월북에 이르는 1년 동안 극단 혁명극장과 함께 세 편의 희곡을 무대에 올렸고, 해방 후 연극계의 상업주의, 공식주의, 예술지상주의를 모두 비판했다. 그는 조선의 리얼리스트 연극인은 현실을 정확히 보고 파악하여 작품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예술의 임무를 사회적 공감과 협동에서 찾았다. <겨레>는 여성 해방을 다룬 희곡이자 국제주의적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