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중미화해, 한반도정치, 그리고 냉전체제
중미화해는 단순히 냉전체제 속의 데탕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와식민지시대의 억압과 저항에 뿌리를 둔 그리고 그것의 마지막 시기에는 중국과 미국이 대결의 중심이 되었던, 냉전질서 자체의 해체를 의미했다. 다음과같은 이유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 첫째, 중국의 미국 접근은 사회주의 진영의 와해, 특히 소련과 북베트남이중국의 이익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기초를 두었다. 북베트남이 미국과 협상을 추진하는 것은 문화혁명의 대의를 배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소련의 노선을 수용했다는 의미였다. 소련의 군사적 위협은 중국에게 사활적인 문제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미국에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북베트남의 협상추진과 소련의 위협은 중국이 미국과화해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해주었다
[학술논문] 중국인에 의한 한국전쟁 기억화 -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시기 항미원조(抗美援朝)영화 연구
...<해방일보(解放日报)>에 실린 광고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상하이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광고였는데, 당시 유행하던 모범극과 ‘항미원조’영화 광고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72년을 전후로 ‘항미원조(抗美援朝)’영화의 소환은 국제적 고립으로부터의 탈주를 위한 선제적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60년대 중소 국경분쟁이 구체화 되면서 기존 위협국인 미국에 더하여 소련에 대한 경계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국제적 고립상태에 처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선택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었고, 이를 위해서 중국과 사회주의 특수관계를 맺은 국가들, 특히 미국을 주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국익차원에서 대미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설득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197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