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1259년 북계 成州 岐巖城戰鬪 승전의 역사적 성격
...지유가 휘하 야별초 군사들(대략 200명 내외)과 성주 백성들을 총괄 지휘하여 몽골 기병대를 격퇴시켰다는 점이 특색이다. 기암성전투 승전 요인은 ①기암성이 비류강·기창후천에 둘러싸여 있고 비교적 험준한 산악지대에 위치하여 적군 방어에 유리하였다는 점, ②고려 최정예 군사집단이었던 야별초가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점, ③몽골 제5차 침입 때까지도 몽골군에게 한 번도 침입을 받지 않았던성주민의 항전 역량이 1259년까지 일정하게 보전되고 있었다는 점이주효하게 작용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하여 북계에 주둔 중인 몽골군은 북계의 여러 산성을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고, 고려와 몽골 사이에서 태자친조를 조건으로 강화 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되어 결국 1259 년 4월에 대몽강화가 체결되는 데 일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