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연석회의에 박학은 김일성의 초청으로 참가했다, 평양 출신이라 그대로 눌러앉았고 김원주는 남조선민주여성 대표단으로 참가했다. 그런 인연도 있었지만 김원주는 노동신문 국제면 편집주간으로 여성 최초로 신문편집의 실력자였다. 김현숙(1953년), 우인희(1956년), 성혜림(1958년)은 거의 같은 시기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배우생활을 시작해서 서로 의지하는 친근한 사이였다. 오랜 선배들인 문예봉, 김효정(오병초의 전처)들이 김정일의 퇴출로 철도연극단으로 좌천됐을 때 그들은 연극단에 찾아가 위로의 인사를 하기도 했다. - 「2 영화 시사회」 중에서 ● 내가 영화배우 김현숙을 처음 만난 것은 우연이다. 1961년 11월 평양철도 보통강역이었다. 집이 근처여서 남포에서 들어오는 열차를 타고 평양역으로...
[사회/문화]
...던져졌을 때 허정숙은 연안에서 모택동에게 혁명전략을 배우고 있었고, 고명자는 경성에서 친일잡지의 기자 노릇을 했다. 해방공간에 허정숙과 고명자는 38선의 북쪽과 남쪽에 있었고, 허정숙은 김일성의 측근이었고, 고명자는 여운형 옆에 있었다. 이들은 혁명의 여정에서 남편을 잃고, 투옥되고, 고문을 당하고, 아이를 잃고, 마침내 시베리아에서, 평양에서, 경성에서 외롭게 죽어갔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식민지 조국의 국민이 되어 일상은 깨지고 생활은 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래서 세 여자는 자연스레 삶을 역사에‘올인’했고, 재산도 버렸고 애인과 가족도 버렸고 더 버릴 것이 없을 때는 목숨을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세 여자를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다. 상황과 역할에 충실했던 그런 여자들이, 20세기 초...
[학술논문] 불가리아 작가가 본 한국전쟁 당시의 북한 사회 - 게오르기 카라슬라보프의 회고록을 중심으로
불가리아 방문단이 북한을 처음 방문한 것은 한국전쟁 중에 이루어졌는데, 이 방문단은 불가리아에서 파견된 대표 3명과 베이징에 있는 불가리아 대사관의 비서 1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방문단 중의 한 명은 당시 불가리아의 유명 작가이며 정치가인 게오르기 카라슬라보프였다. 그가1951년 11월에 북한을 방문하고 쓴 회고록은 1952년 3월부터 불가리아 일간신문인 ‘Rabotnichesko delo(노동신문)’에 24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작가는 신의주에서부터 평양까지 가면서 본 북한 주민의 열악한 상황, 전쟁의 실상 그리고 노동자들의 삶을 묘사했다. 그는 고아원, 공장, 마을 등을방문하면서 북한 사람들이 불가리아 사람들과 비슷하여 고향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그는 많은 전쟁 영웅과 김일성을 만나고서 북한 사람들의...
[학술논문] 남미 지역 해외 이산가족의 서사―존재의 가능성으로서 시공간과 의미의 재구성
...시작으로 남미지역에 이민이 활성화되었다. 이민자들 중 상당수가 이북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들이었는데, 해외에 거주하는 그들은 남한과 북한에 모두 포함될 수 있는 동포에 해당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이산가족들은 토론토의 해외동포이산가족찾기회와 평양의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를 거쳐 해방과 한국전쟁 때 헤어진 부모 형제와 자식을 찾았다. 고향에서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해주었고, 그들은 남한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그들의 존엄성을 보편 세계로 이끈 것은 정체성의 기반이 되는 가족공동체였다. 분단사회로부터 자유로운 세계, 이념의 자기장으로부터 벗어난 공간에서 그들은 고향 땅과 부모 형제, 자식을 향한 내면의 자유를 느끼고 자유의지를 실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