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북한문학에서 프로시의 위상과 가치
본고는 북한문학에서 프로시의 위상과 가치를 다루었다. 첫째, 북한의 시기별 조선문학사에서 프로시의 지위와 역할의 변화 문제, 둘째, 주체문학론의 등장 이후 프로시의 확충 및 혁명문학의 절대화에 따른 지위 하락에 주목하였다. 북한의 조선문학사(전 15권)와 현대조선문학선집 등을 보면, 프로시의 위상이 꽤 높아진 듯하며, 그동안 문학사 서술에서 배제되거나 실종되었던 시인과 작품이 상당히 복원되었고 그에 대한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주체문학에 의한 김일성과 항일혁명문학의 절대화, 1920~30년대 작품을 발굴하여 문학사를 풍성히 하라는 김일성의 교시, 인민성과 계급성에 기반한 민족제일주의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요컨대 프로시와 근대시 일반에 대한 미학적 평가의 변화가 초래한 지형이 아니라...
[학술논문] 박문원(朴文遠, 1920~1973)의 미술비평과 미술사 서술
...자연주의뿐만 아니라 생산성을 강조하면서 작가 주체를 도식의 틀 속에 가두는 당대 소비에트 미술의 경향성 또한 그의 적이 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박문원에게서 이러한 작가 주체에 대한 강조가 점차 조선전통의 詩 정신, 고대 신화에 대한 천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작가 주체의 능동적 태도를 고무하기 위한 대안으로 선택된 전략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두 가지 축, 과학적 태도와 실천적 태도 가운데 전자-과학적 태도의 위상을 위축 또는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즉 ‘프롤레타리아의 당파성’을 강조하던 해방기 박문원은 ‘조선적인 것, 애국주의와 독창적 예술성’을 강조하는 1960년대의 박문원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해방공간, 그리고 1950~1960년대...
[학술논문] 안룡만 연구 시론(試論) - 서사성과 낭만성을 중심으로
...안룡만 시의 전반적 특징과 문학사적 평가를 살펴보았다. 안룡만은 1916년 평북에서 태어나 1975년 북한에서 사망한 시인으로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겪은 공장 노동자 생활을 그린 시로 1934년 등단하였다. 북방 유민(流民)의 고단한 현실과 생생한 노동체험을 그려낸 안룡만의 시는 1930년대 프롤레타리아 계열 리얼리즘 시로 높게 평가되었다. 분단후 북한에서 안룡만과 작가동맹 지역 간부로 활발히 활동하며 4권의 시집을 남겼다. 안룡만은 사회주의 건설, 김일성항일투쟁 형상화, 사회주의 노동영웅 찬양과 같은 북한 문학의 중요한 주제들을 충실히 시로 써냈다. 당, 수령, 노동계급의 요구를 충실히 전달하는 전달자였던 그는 최근의 북한문학사에서도 높게 평가 받는 북한의 대표 시인이다. 서사성과 낭만성은 안룡만 시의 중요한...
[학술논문] 韓國戰爭期 毛澤東-彭德懷의 戰役遂行戰略 硏究
... 毛澤東이 추구하고 달성하고자 했던 국가목표가 실제적으로 달성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毛澤東이 한국전쟁에의 참여를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공산주의 국가의 종주국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스탈린과의 수직적 서열 관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연대 의무, 2차 국공내전(國共內戰) 기 북한 김일성의 후방지역에서의 지원에 대한 보답 등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중화중심적 국가전략에 기초한 국가이익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전 후, 중공군에 의한 1~5차 戰役 수행 시, 毛澤東의 국가전략 목표와 彭德懷의 군사작전 목표를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참전 배경이 되었던 국가전략목표의 변화를 들여다봄으로써 毛澤東의 국가전략목표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군사작전 목표는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학술논문] 6·25전쟁 기간 유엔군사령부와 조중연합군사령부 수립에 관한 비교연구: 남·북한의 작전지휘권 이양을 중심으로
...수호라는 동일한 가치 추구의 결과였다. 또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이승만의 정치적 안정성을 보장하였으며, 이승만의 미국에 대한 용미 인식은 작전지휘권 이양에 있어 주저함이 없도록 작용하였다. 반면 김일성의 작전지휘권 이양 지연은 소련, 중국, 북한의 3자 관계에서 전쟁계획과 참전에 대한 서로 다른 정치적 목적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연대 가치의 딜레마가 영향을 미쳤다. 또한 김일성의 국내 정처적 안정성은 전쟁 패배의 책임과 연안 계열의 득세로 인해 안정적이지 못했으며, 특히 김일성의 중국에 대한 불신 인식은 이러한 주저함의 내적 바탕이 되었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현재까지 유산으로 남아 있는 유엔군사령부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향후 한반도 위기 시 또는 유사시 조중연합군사령부 재창설에 대한 정책적 함의를 도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