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한국전쟁 직후 남북한 전통음악연구 배경과 양상
이 논문에서는 한국전쟁 직후 남북한에서 이루어진 전통음악과 관련한 연구가 어떠한 배경 하에, 어떤 내용과 어느 연구자에 의해서 연구되었는지 비교 고찰해 보고자 하여 1950년대 남북한의 저술 목록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휴전으로 매듭을 지은 남북한은 이념을 달리하는 두 체제로 갈라졌지만 일본 제국주의 논리로 세워진 식민사관(植民史觀)적 학문 풍토를 타파하고 민족주의(民族主義)적 관점으로 바로 세운 학문을 구축해야 하는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한은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학문적 토대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국가와 학자와의 관계라는 면에서 경향을 달리하고 있었다. 남한은 학자 개인의 의지로, 북한은 국가가 주도하는 상반된 연구경향을 띄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전통음악의 연구 경향도 다른 점을 보였다
[학술논문] 동경제국대학의 조선유학생 연구
...동경대학동창회의 명부, 당대 조선 유학생들이 생성한 자료, 졸업생들의 다양한 회고록과 고등문관시험 합격자의 총독부 신원조회, 조선총독부 직원록, 각종 인명사전 등을 기반으로 하여 작성되었다. 이들 자료의 분석을 통해 근대 이행기 특정한 사회경제사적 배경을 지닌 계층이 교육을 통해 계급 재생산을 이룬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제국대학 출신자들의 졸업 이후 사회적 경력의 중요한 비중이 대부분 관료였다는 사실을 실증하였다. 또한, 동경제국대학 출신자들이 조선학술원 및 대학제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확인함으로써 제국의 지식이 해방 이후 탈식민지 사회에 지속 변용되는 양상을 고찰했다. 전체적인 이력의 조사를 통해서 식민지 및 남북한 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그들이 사회적 중추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술논문] 石堂 鄭在煥선생의 문화유산․기록유산에 대한 계승 노력과 인식
...독립건물도 확보하였다. 이에 1966년에는 우리대학 박물관이 전국에서 으뜸되는 위상을 확보하였으며, 도서관 소장의 古書도 국내에서 손꼽힐 규모였다. 고서 가운데는 『고려사』, 해인사대장경판 및 諸경판의 인출본 완질 등 고려시대를 연구할 수 있는 핵심적인 원천기록유산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박물관에는 국보․보물급의 문화재도 상당수 소장하고 있었다. 석당은 석당학술원의 전신인 古典硏究所․韓國文化硏究所와 같은 전문연구기관도 1958․59년 각각 설립․운영하였다. 고전연구소에서는 1958년부터 남북한 최초로 『고려사』 역주사업을 착수하여 1973년까지 『譯註高麗史』 11책을 완간하였다. 이에 우리대학은 해당 분야에서 전국적인 인지도와 지명도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석당이 이런 노력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은 우리나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