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이승만의 민족운동에 나타난 기독교 국가건설론과 사회윤리
...입국론을주장하였다. 특히 그는 1919년 3.1운동은 한국의 기독교 목회자들의 주도하에일어난 거족적 독립운동이라고 규정하면서, 대한민국은 기독교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이며, 한국을 ‘아시아의 모범적 예수교국가’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한국을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로 건설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보장,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신앙에 기초한 개인윤리, 그리고 역사 변혁적인 기독교사회윤리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승만의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건설론은 대한민국 건국의 과정에서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정부와 국회에 참여하고,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윤하영 목사가 기도를 하는 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승만이 한민족의 독립운동의방략으로 택한 친미적 외교독립노선은 1945년까지 미국정부의 호응을 얻지...
[학술논문] 2013검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 분석 - 교육부의 수정 과정을 중심으로 -
...8종이 2013년 8월에 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그러자 이를 둘러싼 ‘교과서파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8종의 『한국사』 교과서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 교과서는 기존의 교과서가 지녔던 주요 문제점을 거의 그대로 지니고 있다. 교육부의 수정 과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면, 제(諸) 문제들은 주로 현대사 서술에 집중되어 있으며, 크게는 북한에 관한 호의적인 서술과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훼하는 서술로 나눠진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1948년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현행 한국사 가운데 3종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서술했다가 교육부로부터 수정 권고를 받았다. 특히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훼하는...
[학술논문] 대한민국 제헌헌법과 ‘건국절’ 논란-헌법 전문과 중앙정부론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통치한 잠정국가인 대한민국의 독립정신을 계승해 민주독립국가로 재건된 헌법상의 현실국가였다. 하지만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이 아니라 대한민국정부가 남한 단정으로 수립된 날이다. 남한 단정은 1948년 12월 12일자 유엔총회 결의로 분단정부로 전화했다. 분단정부인 대한민국정부를 전국정부로 변신시키고 여기에 대한민국을 유일합법국가인독립주권국가로 보는 시각이 덧씌워지면 분단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8・15 건국일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대한민국정부는 유엔 결의에 의한 유일합법정부이며 이 유일합법정부는 곧 전국정부라는 것과 그 정부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인 독립주권국가라고 주장하겠지만, 그 실제 내용은 분단국가의 분단정부이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정부를...
[학술논문] 헌법규범과 헌법현실 - 한국헌법의 규범과 현실의 괴리문제 -
본고에서는 1987년 개정된 현행헌법의 헌법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국가의 최고규범으로서의 헌법의 실질적 기능을 헌법현실과의 일치여부의 관점에서 평가하며, 우리 헌법현실의 개별적인 몇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검토를 통하여 대한민국헌법이 더 이상 ‘명목적 헌법’(nominal constitution)이 아닌 진정한 ‘규범적 헌법’(normative constitution)으로서의 위상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헌법적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1987년 헌법은 1948년 건국헌법이 제정된 지 40 년만에 비로소 뢰벤슈타인이 규정한 이른바 ‘규범적 헌법’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헌법규범과 헌법현실이 거의 일치되거나 양자 간의 괴리가 최소화되는...
[학술논문] 국방경비법의 유효성에 대한 소고 - 최능진 사건 결정을 중심으로 -
최능진은 평남 강서군 출신의 우익계열 독립운동가로서 1937년 도산 안창호와 함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해방 직후 미군정에 의해 경무부 수사국장으로 근무했으나 친일청산을 외치다가 파면을 당하기도 한 인물이었다. 그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5.10총선거에 이승만에게 도전하는 등 이승만의 정적 1호로 불릴 만큼 유명했으나, 정부수립 후 한달 만에 내란음모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북한군에 의해 풀려나서 서울에서 평화운동을 벌이다가 친북활동가로 몰려 1951년에 이적죄로 총살당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8월 18일 군법회의에서 인정한 사실관계는 모두 왜곡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