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남한과 유엔의 북한지역 점령정책 구상과 통치 ― 타협과 현실의 괴리 ―
...as the US and the ROK forces occupied the important areas including P’yongyang; in the eastern area, the ROK forces took the initiative in the military administration as they advance across the 38th Parallel on October 1 and occupied the critical areas in advance while the UN forces landed in and occupied Hamkyong Province about one month later. The ROK forces thus proclaimed martial law in the...
[학술논문] 한국전쟁 휴전회담시 해상분계선 협상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연장선이북의 기타 모든 섬은 전부 북한에서 통제한다.”는 것에 최종 합의했다. 휴전회담의 과정을 볼 때, 양측이 지상 군사분계선을 연장한 선을 해상분계선으로 합의했다고 볼 수 있다. 서해 5개 도서는 이 해상분계선을토대로 38도선을 가상선으로 설정한 후 ‘연해도서의 정의’를 협정문에 삽입함으로써 예외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것은 군사분계선 협상에서 쟁점이었던 ‘38도선’을 해상분계선 논쟁에 끌어들인 셈이었다. 서해 5개 도서는 38도선 이남이며, 군사분계선 연장선 이북에 위치한 섬들이다. 서해5개 도서에 대한 예외 규정이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지상의 군사분계선설정과 같은 방식의 논란을 거친 후, 최종적인 합의는 양측 군사력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학술논문] 서해북방한계선(NLL)의 법적성격에 관한 연구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서해 북방한계선은 1953년 8월 30일에 유엔군과 한국군의 북쪽해상으로 월선(越線)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되었다. 간헐적으로 무력충돌은 있었으나 쌍방 간의 무력적 충돌방지역할은물론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유지시켜 온 사실상 남북한 간의 해상경계선이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은 한국해군에게 북한의 해주 및 옹진반도, 장산곶을 연하는 해역을 통제함으로써 북한 해군의 활동 영역을 제한시키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안보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서해5도의 주변 해역을 자기들의 영해라고 주장하지만 서해5도를 위시하여 38도선 이남에 있는 영역과 섬들은 대한민국이 주권을 중단 없이 행사해온 곳이다. 우리는 실효적 지배를강화함으로써 서해북방한계선에 대한 영토관할권 행사를 해야 할 것이다.
[학술논문] 해방 후 한국광복군의 국군 참여와 활동
...점이다. 다른 하나는 만주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의 경험을 중시하고,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해 민주공화제로 성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강했다는 점이다. 광복군 출신들은 이 같은 역사의식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해방된 조국의 군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하지만 해방된 조국의 현실은 이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미국과 소련이 38도선을 경계로 남북한을 분할 점령한 뒤 각기 군정을 실시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현상유지정책’을 펴면서 ‘미군정 유일정부론’을 공포하여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광복군은 1946년 5월 이후에야 개인자격으로 환국할 수 있었다. 더구나 광복군이 환국할 즈음에는 미 군정청을 중심으로 창군작업이...
[학술논문] ‘정전협상 초기 논의’ 과정에서 김일성의 대응에 대한 연구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전쟁 기 공산권의 정전협상 논의 태동과 협상과정에서 김일성의 ‘동의 여부’와 그 배경을 연구하는 데 있다. 김일성은 중공군의 5차전역이 실질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인식한 이후에도 줄곧 공세적 전쟁 수행과 완정론(完征論)을 견지했다. 이는 다분히 김일성의 정치권력 유지와 연계된 측면이 크다. 38도선과 유사한 전선에서의 전선 교착과 정전협상 국면은 지도자의 책임론과 맞물려 있다. 더구나 남한의 이승만은 북진통일론을 견지하고 있었고, 정전협상의 전개가 공산권 측 의도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했다. 특히 중공군이 참여한 상황에서 연안계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았고, 뻬이징(北京)이 협상 전면에 나선 상황에서 모스크바도 김일성의 정치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