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이자 2차대전 이후 세계에 냉전 질서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빚어진 국제적 열전이었다. 여기에 연루된 여러 국가와 민족은 과거의 복잡한 역사적 궤적이나 의미, 가치 등을 뒤로하고 새로운 세력권을 구축해갔다. 이 세력 관계의 표층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이름으로 구현되었다. 한반도가 분단되어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게 된 명분은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전쟁의 필연성을 담보하는 필요충분조건이 ‘적’의 존재라고 할 때, 한국전쟁에서 적의 정체는 ‘이데올로기’라는 추상의 영역에서 추출되었던 것이다. 아감벤이 말하는 ‘장치’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전쟁을 추동한 ‘전쟁의 장치’는 국제적 역학 관계와 반공이데올로기라는 틀이다. 이 ‘장치’는 관념과 실천 사이에 필연적 인과율이 없으며, 관념이 실천을 장악할 때 구체적 상황들에 대한 몰이해와 폭력의 부조리가 발생함을 강조한다.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피해가 극심했던 것은 이런 점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오랜 세월 공식 역사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민간인 피해자들의 서사는 문학작품의 형태로 흔적을 남겼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본고에서는 다나카 고미마사(田中小実昌)의 「상륙(上陸)」(《시그마(シグマ)》, 1957)과 곽학송의 『철로』(《교통》, 1955년~1956)를 비교 고찰했다. 다나카 고미마사의 「상륙」에는 참전할 의사가 없는 민간인이 권력자들의 농간과 강제에 의해 한국행 배에 타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는 한국전쟁 당시 암묵적으로 진행되었던 일본 민간인들의 참전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곽학송의 『철로』에서는 남측이나 북측 모두 개인의 개체성에 대한 존중과 보호 없이 사람을 무조건 이데올로기에 복속시키려는 통치구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민간인이 통치의 ‘장치’에 의해 전쟁에 휘말리는 메커니즘을 폭로한다. 나아가 민간인들이 그러한 ‘장치’에 좌절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모습, 즉 통치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보여준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보인다. 「상륙」의 인물들은 자발적으로 하선을 결정하고 「철로」의 주인공은 통치자들의 결정에 복종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이 작품들의 민간인 표상을 통해 우리는 한국전쟁을 유발한 냉전 체제와 국가 폭력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보다 객관적이고 폭넓은 시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필요한 트랜스내셔널한 관점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과도 조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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