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한국전쟁기 대한적십자사의 조직정비와 대한적십자사의 활동을 검토한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살펴본 것은 첫 번째,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대한적십자사가 어떠한 조직정비 노력을 했는가였다. 대한적십자사는 1949년 4월 30일 대한적십자조직법에 의해서 기존의 조선적십자가 대한적십자사로 재조직된 것이었다. 이 법에 근거하여 대한적십자사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백만회원가입운동 및 회비모금을 통해 조직의 안정화를 꾀하였다. 하지만 약 1년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위기를 맞이하였다. 수도 서울이 함락되면서 총재인 양주삼을 비롯해 많은 적십자 직원이 납북되었고, 본부 및 지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전쟁은 동시에 대한적십자사가 본래의 기능인 인도주의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인도하였다. 이 시기 대한적십자사는 조직을 재정비하는 동시에 회원모집운동을 전개, 회비모금, 정부의 적극적인 재원마련협조를 바탕으로 인도주의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대한적십자사의 구체적인 인도주의활동을 살펴보았다. 대한적십자사는 군인 및 국민들에 대한 보건의료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위해서 서울적십자병원의 보강, 지방 도시에 적십자병원을 설치, 지사진료소의 확충, 공보선전사업의 강화, 적십자병원 간부의 미국유학 장려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전재민에 대한 구호활동 및 재해 구호활동도 전개되었다. 북한의 갑작스런 침략에 대해 전 세계 적십자는 대한민국에 구호품을 보내왔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를 적시에 이재민들에게 분배되도록 노력하였다. 부녀봉사대원의 활동도 빼놓을 수 없었다. 전시하에 부녀봉사대는 피난지에서의 산모 조사 및 지원, 군경에 대한 군복수선 및 세탁, 위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전쟁 중 청소년적십자조직의 창설은 대한적십자사의 현재와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학생조직을 인정하지 않던 정부를 설득하여 청소년적십자단(RCY)를 창설함으로써 청소년을 통한 인도주의활동의 전개 및 세계청소년과의 교류 등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대한적십자사는 창립 본연의 임무인 인도주의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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