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모윤숙의 사례를 통해 ‘북한군 점령기 서울’이 미군 심리전의 범례로 활용되는 양상을 살펴 잔류파/도강파의 구분을 통해 생산된 반공수기 텍스트가 미군 심리전의 사례가 될 때 달라지는 시각, 관점을 상론하고자 했다. 적화삼삭 체험이 내셔널리즘의 기억으로 서사화되는 과정에 중첩되어 나타나는 냉전 심리전의 맥락은 한국전쟁이 어떻게 냉전자유주의로 확대될 수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모윤숙의 잔류 서사는 부역자나 비도강파 문제 외에도 더 면밀하게 살펴야 할 쟁점이 있다. 수복 직후 모윤숙의 잔류 체험은 미 육군통신대 <여류시인(POETESS), ADC 8517 A~B> 필름에서 확인된다. 1950년 10월 중순 맥아더 사령부에서 전투지역 심리전을 담당할 장교 및 군속을 파견해 조직한 사령부 직속 사진부대가 촬영한 것이다. 영상에서 자살의 기독교적 알레고리와 클로즈업한 인물의 표정 및 동작을 정밀하게 보여주는 여러 신은 기록영화에서 배경과 상황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과 다른 성격을 지닌다. 비서구 주변국에서 냉전 구도와 군사적 충돌이 먼저 진행되자 미국은 공산주의 대 자유주의의 역학관계 속에서 특히 개별(또는 집단) 행위자의 반응을 수집해 목록화하기 시작했다. 1950년 12월 미 공군대학 HRRI(인적자원연구소)팀은 한국에 도착해 북한군 점령기 주민을 대상으로 체험을 조사한다. 미 사회학자의 시각에서 북한은 소련 위성국가 중 하나이며 3개월간의 북한군 점령기는 냉전체제가 본격화되기 전에 미국의 작전과 전략을 확인, 검증할 실증적인 견본이기도 했다. HRRI팀은 적치삼삭 수기집 『고난의 90일』을 『빨갱이들의 도시 점령(The Reds Take a City)』(1951)에 수록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중국어 등의 4개국 번역판으로 출판한다. 미 심리전의 일환으로 자신의 체험이 선택, 재현, 번역된 경험은 어쩌면 모윤숙이 30여 년간 잔류 서사를 부단히 반복하게 된 이유였을지 모른다.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이 미 심리전에 활용되면서 모윤숙은 한국전쟁을 세계동시성의 사건으로 인식하고 미국의 시선 속에서 자아와 세계를 재발견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 순간이란 자기 서사가 냉전의 집단기억으로 공식화되는 과정의 기원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은 냉전체제의 주변부가 반공블록 내부에 편입되는 역사적 단계에 해당한다. 더욱이 1960년대 이르러 공보부 요청으로 베트남전쟁 파병 문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자마자 모윤숙이 잔류 서사(「이 목숨의 방황」, 『회상의 창가에서』, 1968)를 다시 꺼내 국군 표상을 새롭게 추가했다는 사실은 다시금 주목할 만하다. 미 심리전에서 최로로 활용된 적화삼삭 체험은 사후적 기억으로 부단히 재가공될 뿐만 아니라 냉전체제의 전리품으로서 얼마든지 재생산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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