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상대국 ‘인민’을 활용하여 비정부 수준의 접촉을 도모하는 인민외교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북한 인민외교의대상은 상대국 인민(국민)이었다. 이와같은 비정부 차원의 접근은주로 조선노동당 국제부와 당의 지도를 받는 당외곽 조직인 대외문화연락위원회, 각국의 친선협회, 김일성연구소조, 연대성위원회등 당 외곽단체에 의해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인민외교 접근 시 1단계에서는 조선노동당 국제부의 지도 하 상대국의 정당과 교류하여 상대국과 상호 친선단체를 조직하였다. 2단계에서는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등 당 외곽단체를 앞세워 비정부 수준의 대표단을 파견하여 경제ㆍ문화 교류를 도모한후 경제ㆍ문화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3단계에서는 민간무역대표부 및 공보관 등을 개설하는 단계를 거쳐 전개되었다. 결국, 북한이 인민외교 방식을 수행하여 달성하고자 한 목표는, 첫째, 미수교국의 경우 정부 차원의 교섭 시작 전 상대국 인민들과의 문화ㆍ경제 교류를 도모하여 상호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정부 차원의 직접 교섭 시 자신의 외교적목표를 관철하고자 하였다. 둘째, 경제적 실리 확보를 위함이었다. 셋째, 김일성연구소조 및 연대성위원회를 통해 김일성노작에 대한학습 전파와 주체사상을 선전하고자 하였다. 1970년대 초 북한은 적극적인 대미 인민외교를 전개하였다.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자국과 평등한 입장에서 국가관계를 맺기를 원하며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 친선관계를 도모하는 원칙’을 미국과의 관계에도 적용하는 실용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이중적인 태도는 1970년대 초 대미 인민외교 접근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북한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를 주축으로미국공산당과 교류하여 미국 내 미국조선친선공보센터 등을 거점으로 활용하여 적극적인 대미 인민외교를 전개하였다. 결국, 주한미군 철수 분위기를 조성하여 이를 달성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달성하지 못하였으나 미국과 정부차원의 교섭을 시작하는 계기를마련하였고, 미국 의회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소통채널에 확보하였으며, 북한주유엔옵저버 대표부를 대미 인민외교 창구로써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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