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식민지기부터 1960년 무렵까지를 대상으로 박시형의 생애와 역사인식을 검토하고, 북한 사학사의 한 측면을 살펴본다. 박시형은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시대의 전세제도를 연구했지만, 식민지주의적 프레임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한 박시형은 조선공산당에 가입하고,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가 된다. 북한에서 박시형은 집체적 연구와 토론을 통해 유물사관을 단련시켜나갔다. 여기서 그는 혁명적 역사학의 조건들을 발견했다. 50년대 중반부터는 삼국시대의 사회구성체에 관한 논쟁에 참가하여 세계사적 보편성과 아시아적 특수성을 결합시키는 관점을 제시했다. 각 정치적 종파 사이의 권력투쟁이 심화되는 와중에서도 박시형은 유물사관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60년대 이후 발해사 연구를 예고하면서 역사연구의 방향 변화를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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