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DMZ 접경지역 중 북한 지역에 대한 연구이다. DMZ 접경지역에 관한 연구대상을 북한 지역으로 확장하고, 1950년대 북측 접경지역의 형성과 그 특징을 규명하였다. 이를 통해 남북 접경지역에 대한 종합적 이해의 계기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950년대 북한 신문과 미군노획 북한 문서, 농업 협동화 총결 자료, 정전협정 지도 등을 교차 분석하였다. 북측 DMZ 접경지역의 형성은 한국전쟁 전시 경험과 전후 복구라는 내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다. 첫째, 북한은 정전을 북한의 승리이자 평화의 첫 단계라고 평가하고 정전의 공고화를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선전 구호라기보다는 전시 북한이 입은 막대한 피해의 반증이었으며, 전시 피해를 극복하는 데 있어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다. 둘째, 북한은 확정된 군사분계선과 전선에 동원되었던 주민들을 ‘승리’와 ‘영웅’ 등으로 강조했는데, 이를 민심 수습과 접경지역의 신속한 복구에 활용하고자 했다. 셋째, 북한 접경지역의 농업 협동화는 소련의 꼴호즈가 모델이 되기는 했으나, 전시 전선 원호 사업 및 관련 조직 경험에 직접적인 뿌리를 두고 있었다. 전시 이 일대 주민의 영농과 전투 지원 동시 수행 경험은 전후 농업 협동화를 가속화하는 주요인이 되었다. 둘째와 셋째 특징은 북한이 점령한 서부 접경지역(‘신해방지구’)보다는 남한에 피점령된 곳이 많은 중동부 강원도 접경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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