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가족주의는 공통적으로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기초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남북의 가족주의가 가부장적이었다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남북의 가족에서 여성은 각각의 국가적 체제의 전략과 호응하면서 ‘상이한’ 형태로 종속화 및 주변화의 경향성을 보인다. 이는 여성이 안정되고 일관된 젠더 범주가 아니라 권력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수행적 범주이며, 또 그렇기에 여성은 좁게는 가족 내에서 넓게는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상징성으로 규정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 젠더의 상징적 규정이 사회적 조건의 변화에 따른 가변적이라는 점은 현실에서 여타의 요소들(가령 타 이데올로기)과 경합하거나 그로 인해 번복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상징성의 잠재적 균열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백남룡 소설 『벗』(1988)을 읽으면서 북쪽의 독특한 가족주의의 지형 위에서 펼쳐진 ‘젠더 정치’(gender politics)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에 이 글은 우선 소설 『벗』이 주체사실주의와 3대혁명을 반영하는 1980년대 북한 소설의 일반적인 특징을 공유하면서 이혼이라는 ‘현실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개괄한다. 그렇지만 이 글이 주목한 점은 ‘현실문제’를 다루는 소설 속에서 ‘여성’을 어떻게 호명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북의 젠더 균질화 정책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간에 간극이 발생하고, 그 간극에서 모순적 호명에 대한 의심이 제기될 수 있음을 논의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논의에서는 그러한 의심 제기의 가능성을 북의 사회적 대가정론과 국가 후견주의가 결국 봉합해버리고 여성을 다시 가부장적 질서 내에 위치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소설 『벗』이 북의 현실문제를 다루면서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여)성해방을 위해 대결해야 하는 것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속시키는 (여)성 억압적 국가가부장제라는 점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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