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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역사학과 소련 역사학의 관련성 - 1945년부터 1963년까지

The Relationship between North Korean historiography and Soviet historiography : From 1945 to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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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호연
소속 및 직함 경남대학교
발행기관 한국학연구소
학술지 한국학연구
권호사항 (77)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47-177
발행 시기 2021년
키워드 #북한 역사학   #소련 역사학   #스탈린주의   #전체주의   #교조주의   #형식주의   #수정주의   #사회구성체   #조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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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1945년부터 1963년 사이에 북한 역사학이 소련 역사학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변모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시기에 소련 역사학은 스탈린주의 역사학으로부터 흐루쇼프 시기의 수정주의 역사학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3년까지 북한 역사학계는 “쏘련을 향해 배우라.”라는 구호처럼 소련 역사학의 성과들을 받아들이는 데 주력했다. 그러므로 1948년 7월에 창간된 『력사제문제』에서는 소련 역사학의 방법론만이 아니라 소련 역사연구의 구체적인 성과들이 다수 소개되었다.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쇼프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소련에서는 수정주의 역사학이 등장하였으나, 여전히 스탈린주의 역사학의 일부 특징은 남아 있었다. 북한에서는 이 시기에 『력사과학』에서 일부 소련 역사가들의 논문들이 소개되기는 했지만, 이전보다는 그 수가 줄어들었다. 김일성의 권력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역사학계에서는 리청원이 숙청되었고, 삼국시대의 사회구성체를 놓고 북한 역사학자들은 1950년대 후반에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1954년부터 1960년 사이의 시기는 북한 역사학이 소련 역사학의 논의구조를 참고하기는 하였지만, 나름대로 의존관계를 탈피하고자 시도한 때였다. 더구나 삼국시대 사회구성체 논쟁이 마무리된 1961년 무렵에는 북한과 소련 사이에는 외교적인 갈등이 증폭되고 있었다. 이때 소련에서는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학술적인 자유가 확대되고 있었던 반면에, 북한에서는 스탈린주의 역사학의 특징인 전체주의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었다.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미하일 박 등 소련 역사학계에 대하여 북한 역사학계가 공개적인 비판에 나섬으로써 소련 역사학과 북한 역사학이 대립하고 갈등하게 된 것은 정치적인 상황만이 아니라 학문적인 노선 차이 때문이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