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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廣州지역 내 한국 독립운동 관련 기념물 조 성과 인식 변화 : 廣州起義烈士陵園 내 中朝血誼亭을 중심으로

The Construction of a Monument for Korea's Independence Movement in Guangzhou, China and Changes to Its Meanings : With a focus on the Sino-North Korea Friendship Blood Sacrificed Pavilion in Guangzhou Insurrectional Martyr Cemetery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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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은경
소속 및 직함 독립기념관
발행기관 역사문제연구소
학술지 역사문제연구
권호사항 25(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313-349
발행 시기 2021년
키워드 #광주봉기   #중조혈의정   #독립운동   #기념물   #최용건   #장지락   #기억   #광저우   #조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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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27년 12월 광저우에서 있었던 한인의 광주봉기 참여는 봉기 후 35년 넘게잊히다가 1963년 6월 최용건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의 중국 방문을 기점으로 ‘소환’되었다. 당시 중소 대립 상황에서 북한의 정치적 지원이 필요했던 중국은 중국혁명박물관 참관 때 최용건의 광주봉기 회고를 활용, ‘한인이 중국을 도운’ 역사적 사례로서 광주봉기를 부각시켰다. 이어서 중국정부는 광주봉기 때 한인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물 조성을 주도했다. 장소는 최용건의 회고대로 사허 일대로 정하려 했으나 장소 비정의 어려움때문에 결국 열사능원 내 중소혈의정 반대쪽 공터로 정하고 소련과 대등한 수준에서 기념물을 조성했다. 1964년 10월 최용건의 방중이 예정되면서 준공일은광주봉기 기념일인 12월에서 10월로 앞당겨졌다. 중조혈의정은 중소분쟁 상황에서 북중공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60년대 초중반 ‘북중우호’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시대적 산물로서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지는 조성 이후 정치적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인식으로 표출되었고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한국 독립운동 기념물로 이해되고 있다. 중조혈의정을 둘러싼 인식 변화는 기념물에 대한 현재적 인식이 조성 당시와 일치하는것이 아닐뿐더러 향후 기념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등장하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