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꼼꼼하게읽기(close reading)’를 통해 백석의 대표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의 미적 특성을 분석한 것이다. 백석은 1944년 겨울(1944년 말이나 1945년 초) 만주에서 신의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해방이 될 때까지 줄곧 신의주에 머물다가 해방 직후에 평양으로 가서 평남 임시인민정치위원회의 통역, 그리고 조만식의 통역비서로 활동했다. 그리고 1947년경부터는 러시아 문학작품의 번역에 전념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보면 그는 소극적인 수준에서나마 ‘북한혁명’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의 매체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발표했다. 이 작품에서 백석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인간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그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복귀하려는 의지를 다지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런 내용만으로 이 작품이 주는 감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의 주는 감동은 “나”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다양하고 복잡하고 모순되기까지 한 감정의 갈등과 대립을 한 편의 드라마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형상화의 방법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과 “나”의 삶을 마음대로 굴려가는 “그보다 더 큰 것”의 존재와 위력에 대한 자각 사이의 대립이다. 전자에 집착하는 경우, “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외부로부터 격리시키고 내면에 침잠하는 길을 걷게 된다. 반면 후자의 경우, “나”는 세계의 광포함 때문에 상처받은 ‘무구한 희생자(innocent victim)’인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양자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지양(Aufheben; lift / abolish)시킨다. 이로써 “나-세계”의 대립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게 된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가 마음속에 품게 되는 “갈매나무”의 이미지는 이런 “나-세계”의 관계를 상징하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갈매나무의 “굳고 정한” 본성이 선험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단한 상호작용(갈등과 대립) 에 의해서 획득된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느 먼 산 뒷옆에서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눈을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시인이 꿈꾸는 참된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이 시는 ‘나’의 내면을 지배하는 복잡한 감정들의 뒤엉킴과 그로 인한 긴장과 갈등을 절제된 언어, 군더더기 없는 구성,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적인 사물과 행동을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 패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를 백석, 그리고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에 대한 이해는 이런 작품 분석만으로 완결된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이 시의 발표 시기와 발표 방식과 관련된 의문은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리고 이후 그가 북한에서 번역가, 혹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도 수다한 의문점이 남아 있다. 이런 의문점들은 더 많은 자료의 발굴과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서 해명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들에 대한 분명한 해명이 이루어져야 분단 이전과 이후의 백석의 삶과 시를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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