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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의 부역과 냉전 한국영화의 형성

Controversies of collaboration -Filmmakers and the Cold War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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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순진
소속 및 직함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발행기관 상허학회
학술지 상허학보
권호사항 6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19-161
발행 시기 2021년
키워드 #냉전 한국영화   #부역   #미공보원(USIS)   #아시아재단   #심리전   #존 밀러   #윌리엄 릿지웨이   #이필우   #이형표   #신상옥   #최은희   #이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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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역
초록
기술 인력의 부역 문제와 관련해서 특히 주목할 것은 미군정의 통치와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의 효과다. 일제의 전체주의적 통치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미군정의 통치와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는 8년 동안, 한국에서 영화는 식민 말기와 마찬가지로 (준)전시상태에 놓여 있었다. 생산수단의 국가 장악, 전쟁수행을 위한 도구로서의 영화의 위치, 제작 산업의 극도의 부진 같은 조건들이 지속되면서 전시 뉴스릴과 다큐멘터리를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인력이었던 기술자들을 중심으로 한, 동질적인 역사적 경험을 가진 소규모 집단이라는 영화계의 성격은 유지되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전후에 한국영화가 구조적 변동을 겪게 되면서부터다. 1950년대 후반 동안, 미국의 원조에 힘입은 영화제작의 물적 토대 구축과 자원의 분배에 따른 극영화 제작산업의 활성화, 이질적인 경험을 가진 신규 인력들의 영화계 유입, 직능별 분화와 조직화, 미국식 기술표준과 산업적 표준이 부상하는데 따른 세대교체 등의 변화가 한꺼번에 진행되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이 중단되고 남북한이 적대적 공존상태로 전환하는데 따른 영화계의 구조적 변동의 일부였다. 이형표의 부역 전력 발고 사건은 그와 같은 구조적 변동이 시작되는 시점에 위치하는 것으로, 냉전 한국영화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앞서 보여주었다. 이는 영화계 내부로 본다면 인력의 세대교체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하지만, 보다 큰 역사적 맥락에서는 한국영화가 식민지문화로부터 냉전문화의 일부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해방직후부터 한국전쟁기, 그리고 195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한국영화가 냉전적 구조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부역 문제를 포함한 영화인들의 동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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