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사회주의적 계획경제 체제는 계획과 명령에 의해 경제를 운용한다는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상품을 생산하는데 투입된 노동 가치인 가격을 국가가 결정하는 체제이다. 이 가격은 자립적 민족경제의 유지와 공정성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서, 매우 정교하고 체계적인 조직에 의해 뒷받침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북한의 가격체계는 원칙적으로 이윤을 배제함으로써 교환관계에서의 이해대립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결속과 유대를 유지하고자 한다. 한편 북한의 헌법과 법률에서는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이념에 따라서 가격체계를 구체적인 일원화 및 세부화 제도로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체계는 정확하고 빠짐없는 정보, 적기에 이루어지는 보고⋅결정⋅집행, 각 단계별 담당자의 명확한 역할과 책임 등과 같이 상당히 어려운 전제와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작동하기 어려울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북한의 가격체제는 90년대 이래, 특히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경제위기와 식량위기 이후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제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는 ‘시장화’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시장화(marketization)’란 북한에 ‘시장’이 형성되고, 그 시장이 계획의 기능을 점진적으로 대체해 나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현재 북한에는 중앙계획경제와 시장이라는 두 개의 자원배분 메커니즘이 병존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두 메커니즘의 관계와상호작용은 상당히 복잡하다. 최근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대북제재와 COVID-19의 발발은 북한의 경제상황을 최악으로 치닫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경제에 있어서시장의 ‘불완전한 제도화’는 오히려 권력남용과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북한 경제체제에 있어서 중앙계획적 가격체계의 원형과 붕괴, 그리고 그로 인한자생적 시장화와 불완전한 제도화를 고려할 때, 향후 북한의 본격적인 체제이행과 남한과의 경제교류⋅통합을 추진할 때에는 지금까지 진행된 시장화 현상을 공식화하는 동시에그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가격기제의 공식화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시장가격의 공식화 혹은 가격자유화는 이른바 ‘원에 의한 통제’의 철폐를 의미하는 것이다. 먼저 계획경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가격통제체제를 일반적으로 폐지하는 동시에, 점진적인 가격자유화를위한 선별적 가격통제체제로 전환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법제 측면에서는 앞서 살펴본바 북한 가격체계의 법적 근거라 할 수 있는 인민경제계획법, 화폐유통법, 가격법이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가격자유화 원칙 및 점진적 가격자유화 확대 과정을 담은 대체입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여기에서 단계적 가격자유화 정책의 근거를 마련하는 동시에 이를 집행할 추진체계를 설립하여야 한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