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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유화 인식 변화와 한상익(1917-1997)의 형식 문제

The Change of Awareness of Oil Painting in North Korea and the Form of Han Sang-ik (1917-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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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문경
소속 및 직함 독립연구자
발행기관 미술사학연구회
학술지 미술사학보
권호사항 (57)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91-117
발행 시기 2021년
키워드 #한상익   #북한미술   #사회주의 리얼리즘   #유화   #인상주의   #풍경화   #조선화   #김일성   #김정일   #김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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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4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한상익(韓相益, 1917-1997)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긍정, 부정의 다양한 평가가 존재했다. 주체미술이 구체화되기 전후 평가 양상의 변화와 더불어 특히 1990년대 이후 한상익 작품에 대한 재평가는 북한 미술 안에서 유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한상익은 해방 이전시기 동경미술학교에서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인상주의 및 장식적인 색채 점의 효과를 사용한 흔적이 보이며 그는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면서 그러한 표현을 발전시켜 나갔다. 1950년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는 특히 변월룡(1916-1990)을 통해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소비에트 인상주의를 학습했다. 1950년대 후반기 북한 미술계에서는 도식주의를 배격하고 예술적 기법의 다양성을 모색하며 풍경화 장르와 작가의 개성, 시적 정신의 발현이 강조되었다. 한상익은 이 시기 자신의 풍경화 작품을 통해 ‘객관적 미와 주관적인 것의 긴밀한 연계’를 표현한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는 복잡한 필치 문제로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의 필치는 이후 1960년대에 사상성 강조 속에서 ‘형식이 내용에 종속’되지 못하는 문제로 인해 ‘주관적’, ‘개념적’,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이후 지방 활동에 집중하며 풍경 및 정물 장르를 통해 자신의 필치와 색채를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그에 대한 재평가는 1991년 김일성에 의해 그의 작품이 ‘조선화’와 같은 ‘우리 식의 유화’라고 평가받게 되면서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1970년대 중반부터 기존의 채색주의 조선화에 몰골법이 도입되면서 ‘빠른 붓질의 함축적 기법’이 강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그러한 정황은 한상익이 여전히 인상주의식 색채감과 빠른 필법을 구사했던 것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생애 말년까지 당적 미술에 어느 정도 따르면서도 그는 마치 그 영향 하에 있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형식을 좇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강력한 북한 주체 미술의 이면에 존재하는 한 개인의 작화 방식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