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한국군이 전쟁의 경험을 통해 심리전을 이해하고, 심리전의 수행개념이변화하는 과정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했다. 이는 그동안 군사작전의 측면에서 이해되었던 민사심리전을 역사적 영역으로 연구의 시야를 확장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했다. 첫째, 1950년대 한국군은 6·25 전쟁을 통해 미군 심리전을 경험했고, 전후 국내· 외 정세변화에 따라 심리전 능력 강화를 위해 많이 노력했다. 한국군이 전쟁을 통해경험한 심리전의 형태는 대적·대내·선무 심리전이었고, 방법은 전단 살포, 선무방송, 확성기 사용이었다. 1950년대 말 미국의 대외정책과 북한의 대남전략 변화에 따라, 한국군은 심리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심리전 강화를 위해 조직의 개편, 심리전 교리 연구를 추진했다. 둘째, 1960년대 초기 한국군은 도미유학과 군사파견을 통해 미군 민사심리전 교리를 수용했다. 1960년대 케네디 정부는 제3세계 내 공산주의 확산방지를 위해 근대화론을 주창했고, 미군은 근대화론에 기인한 민사심리전 교리를 정립했다. 반공을 국시로 등장한 군사정부는 한국군 감축문제를 해결하고자 베트남 파병을 추진하는 동시에베트남 군사사절단과 시찰단 파견, 도미 유학 등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한국군은 민사심리전 교리를 수용했다. 셋째, 한국군은 비전투부대 파병을 통해 민사심리전 수행방법을 학습했고, 전투부대파병을 통해 독자적인 민사심리전 방침을 정립했다. 한국군은 베트남 재건사업 지원을위해 건설지원단을 파병했는데, 이들의 활동은 당시 한국군이 국내에서 수행했던 재건사업의 연장이었다. 전투부대 파병 이후 창설된 주월한국군사령부는 민사심리전 중심의 대게릴라전을 통해, 한국군의 특성에 맞는 민사심리전 수행 방침을 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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